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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일사일언] 다정함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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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허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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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반려견과 함께 출연한 여성들이, 반려견이 택한 남성과 데이트하도록 하는 콘셉트였다. ‘펫미픽미’라는 이름으로 10월 말부터 한 달간 파일럿으로 방영됐다. 이 프로그램을 하겠다고 했을 때 동종 업계 종사자인 남편은 결사 반대했다. 동물이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은 통제 변수가 많아 촬영이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동물농장’ 연출도 경험했기에 나 역시 어려움을 예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생길이 훤한데도 끝까지 고집한 것은 ‘다정하고 무해한’ 콘텐츠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선정적인 ‘매운 맛’ 예능이 유행하지만, ‘순한 맛’ 콘텐츠라는 색깔을 지키고 싶었다. 자극이 과도한 예능식 편집을 줄였고, 출연자들이 하지 않은 것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지 않았다. 기획 의도인 ‘반려견과 출연자의 교감’에 집중하며 반려견과 함께하는 자신의 본모습을 이해해 줄 짝을 찾고 싶다는 출연자들 마음에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려 애썼다. 돌발 상황을 막기 위해 동물 행동 전문가를 대동하고 촬영하는 등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고생한 만큼 보람이 있었다.

십수년간 콘텐츠 제작에 몸담으며 깨달은 것이 있다. 사람들은 판단보다는 위로를, 조언보다는 공감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시청자들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콘텐츠에 가치를 부여한다.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알리고 재생산하는 ‘찐팬’이 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다정함(유퀴즈온더블록), 스포츠를 통한 진한 유대관계(골때리는 그녀들) 등 ‘외로움의 시대’에 성공한 콘텐츠들은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격려하고 응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정함을 나약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는 고정관념이다. 다정함은 크나큰 강점이고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구나’ 느끼게끔 해주는 수퍼 파워다. 그래서 나도 ‘다정하고 무해한데 팔리는 콘텐츠’라는, 내가 만드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꾸준히 지키려 한다. 결국 다정함의 힘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옥성아 SBS PD·'다정하고 무해하게 팔리는 콘텐츠를 만듭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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