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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공놀이의 즐거움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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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지난달 24일 카타르 월드컵 H조 1차전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경기에서 황의조가 아쉬워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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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 세계가 카타르 월드컵의 열기로 들썩이고 있다. 그 열광의 한가운데에서 4년 전 러시아에서 열렸던 2018년 월드컵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우리나라는 전 대회 우승팀이었던 독일과 멕시코, 스웨덴까지 포함된 죽음의 조에 속해 많은 고생을 했다. 그나마 해볼 만하다고 했던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0대 1로 패배하고, 이어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도 분전 끝에 1대 2로 패배하자 국민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부분 사람들이 승산이 없다고 보았던 세계 최강 독일과의 최종전에서 2대 0으로 승리하며 심지어 독일을 예선에서 탈락시키는 이변을 만들어냈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고 성과가 있는 월드컵이었다고 평가했지만 내 마음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월드컵 기간 내내 우리나라 축구를 보는 건 참 힘든 일이었다. 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다들 너무, 과하다 싶을 만큼 열심히 뛰고 그렇게 뛴 만큼 처절하게 좌절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축구는 하는 이도 보는 이도 모두 즐거워야 할 '공놀이'인데 누군가의 인생이, 국민의 기대가, 국가의 명예가 선수들의 발목과 등짝에 주렁주렁 매달려 선수들의 허리를 휘게 하는 느낌이었다. 가장 보기 힘든 장면은 경기가 끝나고 나서였다. 세 경기 모두 예외없이 선수들은 휘슬이 울리자마자 운동장에 드러눕거나 몸을 웅크리고 쓰러졌다. 그 모습이 '아아, 이제야 끝났어'라고 외치는 듯해서 단순히 축구가 아니라 우리의 삶, 대한민국에서 살아간다는 일의 치열함과 힘겨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세계 최강 독일을 꺾고 나서 한 인터뷰에서조차 손흥민 선수가 울먹이면서 "국민들에게 너무나도, 너무나도 죄송하고…"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 첫 경기에서 강호 우루과이를 맞아 대등한 경기를 보인 우리나라가 전체 경기 중 가장 좋은 찬스를 맞이했던 장면은 전반 34분에 나왔다. 김문환 선수가 우측에서 올려준 공이 정확하게 황의조 선수에게 전달되었지만 황의조 선수의 슛이 골대 위로 높게 빗나가버린 것이다. 내가 놀란 것은 다음 순간, 황의조 선수가 미안함에 풀이 죽거나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대신 두 손을 깍지 끼어 뒤통수에 올리며 환하게 웃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야, 이거 쉽지 않네 하고 웃으며, 날아간 공에 대한 미련을 훌훌 털어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황의조 선수는 당당했다. 우리는 지난 4년간 열심히 준비했고, 그런 모습을 최대한 보여준 경기였다고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노력했는데 잘 안된 것에 대해 아쉽다 그리고 우리 팀은 다음 경기에서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을 힘주어 전했다. 어떤 이들은 팀의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선수가 웃음을 보이는 것은 책임감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비판하기도 하지만, 나는 황의조 선수의 이 웃음 덕분에 비로소 월드컵을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월드컵은 국가의 명예가 걸린 대결이라고 하지만 축구의 본질은 결국 '즐거운 공놀이'가 아닌가.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는 힘껏 달리고, 물론 결과가 좋다면 다행스럽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긴장과 성취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충분히 멋진 시간을 보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6강 진출 여부와 관계없이, 카타르 월드컵에서 멋진 경기를 보여주고 있는 우리 대표팀에게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한국일보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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