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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박종호의 문화一流] 광고지·영수증 뒷면에까지 글 썼던 남자… 포르투갈 문학의 별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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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실연 뒤 독신으로 살다 47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 페르난두 페소아는 포르투갈이 낳은 세계적 작가로 사랑받고 있다. 페소아가 즐겨 찾았던 단골 카페 ‘카페 아브라질레이라’에는 손님으로 앉아 있던 그의 생전 모습을 본떠 만든 동상이 있다(왼쪽 사진). 그가 영수증 뒷면 등 종이를 가리지 않고 썼던 원고들은 궤짝에 보관돼 있다가(가운데 사진) 나중에 ‘불안의 책’으로 출간됐다. 오른쪽 사진은 1915년 촬영한 페소아의 모습. /아 브라질레이라·위키피디아·페소아 기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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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 가면 세 번 취한다”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경치에 취하고 다음에 파두에 취하며 마지막으로 포트와인에 취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엔 중요한 것이 빠졌다. 리스본이라는 도시 곳곳에 밴, 보이지 않는 정서는 페소아의 단상(斷想)들이다. 골목의 낡은 벽에, 비탈길의 계단에, 오래된 식당의 탁자에 이 고독한 남자의 말들이 스며들어있다.

독일 감독 빈 벤더스의 영화 ‘리스본 스토리’는 독일에 살던 주인공이 포르투갈로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리스본에서 촬영을 하던 동료 영화감독의 도와달라는 전갈에 음향 기사인 주인공은 차를 몰고 먼 거리를 달려간다. 그렇게 리스본의 친구 아파트에 도착하나 막상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방에서 며칠이고 친구를 기다린다. 낮에는 시내를 다니며 도시의 소리를 녹음한다. 밤에는 숙소로 돌아와 친구가 읽던 책을 읽는다. 시 같기도 하고 수필 같기도 하고 잠언 같기도 한, 여러 단상들이 나열된 책에 그는 점점 빠져들어간다. 그가 낮에 도시에 매료되는 이상으로 밤에는 글에 매혹된다.

책의 작가는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로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을 냈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죽은 지 47년이 지나서 유고들이 ‘불안의 책’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수록된 글이 500여 편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책이 나오자 페소아는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시인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작가로 평가받게 되었다.

리스본에 있는 카사 페르난두 페소아는 페소아가 마지막 15년간 세를 들어 살았던 집에 만들어진 기념관이다. 그곳에는 그의 문구, 타자기, 안경 등 많은 자료들이 있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옷 보관용 궤짝으로, 안에는 수많은 종이 쪽지들이 들어있다. 평소 페소아는 틈틈이 생각나는 대로 쪽지에 글을 썼고, 그것을 정리하지도 엮지도 않고 궤짝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둔 채로 세상을 떠났다. 물론 지금 그곳에 있는 궤짝과 쪽지들은 진짜가 아니라 재현한 것들이지만, 페소아의 체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리스본의 상 카를루스 오페라극장 앞 광장에는 독특한 동상이 서있다. 남자의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책이 얹혀있다. 이것은 페소아 상이다. 머리 전체가 책으로 되어있는 것은 인간의 정신은 마땅히 책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며 이 도시의 정신은 그의 책에서 나왔다는 의미다. 그 동상이 등지고 있는 뒤편 건물이 페소아의 생가다. 공무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신문에 칼럼과 음악평론도 썼는데, 음악을 좋아하여 오페라극장 바로 앞집에 살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페소아가 5세 때 사망하고 어머니는 재혼하였다. 페소아는 8세 때에 어머니와 새아버지를 따라 남아프리카의 더반으로 이주했다. 17세가 되자 그는 리스본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혼자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곧 자퇴하고 도서관을 다니면서 홀로 문학을 공부한다. 그는 더반에서 익힌 영어 실력 덕분에 무역회사에 취직하고, 무역 서류를 번역하는 업무를 했다. 그는 회사에서 일하던 틈틈이, 퇴근 때의 거리 카페에서, 단골 식당에서, 그리고 자신의 작은 방에서 수시로 글을 썼다. 노트, 편지지, 메모지, 광고 전단, 영수증의 뒷면에까지 닥치는 대로 썼다. 페소아의 특징은 거의 모든 글을 자신의 이름으로 쓰지 않고, 자신이 지은 다른 이름으로 썼다는 점이다. 그가 이름을 지어준 가상의 인물들은 나이와 성별에 직업과 인격도 가지고 있는데, 그의 이명(異名)들은 80여 개에 이른다. 그는 글 속에서만은 다양한 인간의 모습으로 도시를 살았던 것이다.

페소아는 직장의 동료 여직원을 한 번 사랑했으나, 실연으로 끝난 후에 평생 혼자 살았다. 47세에 간질환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평범한 시민이자 고독한 직장인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나자 궤짝에서 엄청난 양의 원고가 발견되었다. 그 원고들을 정리하고 편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1982년에야 유고들을 정리한 ‘불안의 책’이 발표되고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은 한 도시인이 평생 추구했던 자기 내면에 대한 성찰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명작으로, 지금도 세계인들이 공감과 흠모 속에 읽고 있다.

책을 출판하려고 시를 쓰거나 명성을 얻기 위해 시를 쓴다면 그는 시장 바닥의 시인이고, 시를 쓰기 위해서 시를 쓴다면 서재의 시인이요 진짜 시인이다. 그런 점에서 페소아는 진정한 서재의 시인이었다. 그는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고, 찾아갈 친구도 없어, 셋방에서 글을 쓰며 밤을 보낸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삶에 지친 현대의 직장인들과 흡사하다. 하지만 그는 여흥에도 절망에도 빠지지 않고 권태의 품위를 지키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리스본의 시민들은 페소아의 글을 읽고 암송하며 살아간다. 살아서는 친구조차 없던 직장인의 고독하게 빛나던 정신이 도시를 감싸 안고 있다. 낡고 누추해 보이는 거리지만 도시는 글과 사색이 있어 충만해 보인다. 페소아를 모르고 리스본을 여행한다면, 도시의 껍데기만 본 것이다. 모든 도시는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있어야 빛나는 것이다. 그런 시인의 위로로 시민들은 반복되는 하찮은 일상도 미소로 살아간다.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밤이 오고 마차가 도착하리라. 나는 주어진 산들바람을 즐기고, 그렇게 즐길 수 있도록 주어진 내 영혼을 즐길 뿐 더 이상 묻지도 찾지도 않는다… (밤이 지나가면) 이윽고 꿈속의 드높은 왕좌로부터 리스본의 회계 사무원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나는 이 대비에 억눌리지 않고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이 아이러니가 나를 살아있게 한다. 나를 모욕하는 것들은 높이 나부끼는 깃발이고 나에게 던져지는 비웃음은 내가 새롭게 태어날 새벽을 예고하는 나팔 소리다….”

[박종호 풍월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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