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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유동성 확보에 사활… 증권사 8% 보험사 6% ‘퇴직연금 쟁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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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고객유치 경쟁 격화… 3중고 겪는 보험사는 ‘비상’

만기가 된 퇴직연금 자금을 뺏고 뺏기는 금융회사들 간의 쟁탈전이 벌어지는 연말을 앞두고 증권사 2곳이 12월에 연 8%대 원리금 보장 상품을 내놓겠다고 나섰다. 11월까지 원리금 보장형 퇴직연금 상품의 최고 금리는 연 7.15% 수준이었는데, 한 달 만에 이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금융사들 간 자금 유치 경쟁이 격화되면서 자금 이탈 공포를 가장 크게 느끼는 곳은 보험사다. 시중은행들이 정기 예금 금리를 연 5% 선으로 올리자 보험사들은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금리가 연 6%대인 퇴직연금 상품을 내놓고 있다.

조선일보

◇퇴직연금 이탈, 저축성 보험 만기 이중고

2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다올투자증권은 12월에 연 8.5% 금리를 주는 퇴직연금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키움증권도 퇴직연금 상품 금리를 연 8.25%로 올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연 5~6%대 금리를 제시한 보험사들이 은행권(연 5% 안팎)과 증권사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퇴직할 때 미리 정해진 수준의 퇴직금을 지급하는 DB(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금리 차이가 크지 않을 경우 보다 안전한 은행 상품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퇴직연금 비중이 높은 보험사는 자금이 일시적으로 빠져나갈 경우 유동성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송미정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푸본현대생명보험(부채 중 퇴직연금 부채 비율 49%), IBK연금보험(32%), 롯데손해보험(52%)은 부채 중 퇴직연금 부채 비율이 30% 이상”이라며 “회사 외형 대비 퇴직연금 운용 비중이 높아 대규모 유출 발생 시 대응 부담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보험사의 금리 경쟁력이 떨어질 경우 퇴직연금뿐 아니라 주력 상품 중 하나인 저축성 보험에서도 누수가 생길 수 있다. 우선 10년 만기 저축성 보험의 만기가 돌아오고 있는 것이 문제다. 송미정 연구원은 “2013년 비과세 한도 신설을 앞두고 생명보험사들이 2012년 많이 팔았던 10년 만기 저축보험의 만기가 도래하고 있다”며 “반면 보험료 수입은 저축성 보험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금리에 실망해 저축성 보험을 해지하는 사람들도 늘었고, 은행·저축은행 등 예금 금리가 오르면서 새롭게 저축성 보험을 계약하려는 사람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이 때문에 생명보험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연 6% 금리를 보장하는 저축성 보험 출시도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보험업계에서는 실제로 자금 이탈이 가시화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 8월 생명보험사의 월별 보험금 지급률(보험료 수입 대비 지급 보험금 비율)은 117%까지 높아졌다. 이 비율은 지난 1월과 6월, 7월에도 100%를 넘었다. 생보사가 가입자에게 받은 보험료보다 더 많은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황이 올 들어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금리 상승으로 채권 가격도 하락… 당국도 “매도 자제”

보험사들이 기존처럼 보유한 채권을 팔아서 자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금리 상승으로 보유한 채권의 가격이 떨어져 팔기에 좋은 시점도 아니다. 또 채권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융 당국에서도 보험사에 “채권 매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지난해 월평균 8조2000억원 규모였던 전체 보험사의 월평균 채권매도액이 올해(1~10월)는 7조1000억원으로 줄었다.

보험사들은 원래 초단기 자금 마련 수단으로 주로 활용했던 환매조건부채권(RP) 매도를 통해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지난해 월평균 RP 매도액이 5조6000억원 규모였는데, 이달 들어 지난 14일까지 그 두 배가 넘는 12조7000억원 수준이었다.

내년에는 보험사가 자본 확충을 위해 많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형식상 만기가 없어 자본으로 인정받는 채권)과 후순위채 등 자본성 증권의 조기 상환 시기가 대거 도래한다. 내년에 조기 상환 시점이 돌아오는 보험사 자본성 증권은 총 4조4000억원 규모인데, 조기 상환 시점이 투자자들에게는 사실상의 만기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상환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금리가 추가로 상승하거나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보험사들이 상환을 위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홍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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