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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中 ‘백지시위’ 거세지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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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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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중국공산당의 최대 지지층으로 여겨진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중국 젊은이들이 마침내 반대쪽 칼날을 중국공산당에 겨눴다.”

중국 현지에서 정치·외교 문제를 분석하는 전문가는 29일 익명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제로 코로나’ 정책에 항의하는 반(反)봉쇄 시위가 당국의 검열과 통제에 항의해 아무것도 써 있지 않은 A4 용지를 들고 시위를 벌이는 이른바 ‘백지행동’이라 불리는 반(反)정부 성격의 정치 시위로 변하고 있는 걸 보며 내린 평가다. 그는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생)’와 ‘링링허우(零零後·2000년대생)’로 불리는 중국 젊은층은 시진핑 시대 애국주의를 대표했지만 중국 정부의 ‘양날의 검’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는 이날 “ 약 150개 중국 대학의 학생들이 ‘백지행동’에 참여했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 “숨막힐 듯한 검열에 자유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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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링허우와 링링허우는 중국공산당 핵심 지지층이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시진핑 시대 강화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여기에 가파른 중국 경제 성장의 수혜자가 되면서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하지만 2020년부터 3년간 일상을 파괴하다시피 한 제로코로나 봉쇄 정책과 이에 대한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 강화된 사회통제와 검열에 지친 2030세대들의 분노가 이번 시위를 통해 폭발한 것으로 풀이된다. 언로가 막힌 상황에서 중국 대학들도 강력한 봉쇄 정책을 실시햇다. 이달 봉쇄로 출입이 통제된 허베이성 스자좡시 미디어대에서 격리 중이던 학생이 건강 이상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지기도 했다. 불만이 누적되는 가운데 24일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 사고가 봉쇄로 인해 인명피해가 커졌다는 의혹이 도화선이 됐다.

언론 통제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 2030세대들은 우루무치 사고에 대한 추모마저 막는 당국에 분노했다. 실제 중국 전역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약속이나 한 듯 “언론 자유”를 요구하는 구호가 등장했다.

27일 청두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不自由毋寧死)”를 외쳤다. 불룸버그에 따르면 28일 베이징대에서 공안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끌려가던 한 학생이 자유로울 수 없다면 죽음을 택하겠다고 외치는 영상이 트위터에에 올랐다. 상하이 시위에서 20대 젊은이들은 “추모 발언만으로 범죄자가 되면 안 된다”며 “우리에겐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두에서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 참가자는 CNN에 “숨막힐 듯한 검열에 대한 경험이 제도화된 자유에 대한 갈망을 일으켰다”며 “우루무치 희생자 추모와 민주주의·자유 요구는 분리될 수 없다”고 했다. 한 시위대는 “시위에 참가한 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고 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한 참가자는 “나는 조국을 사랑한다. 하지만 정부를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CNN은 “코로나19 관련 고강도 봉쇄 조치에 저항하는 중국의 이른바 ‘백지 행동’은 자유를 갈망하는 청년 세대의 움직임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검열에 저항한다는 의미인 백지는 2020년 홍콩에서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시위 때도 등장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당국의 강력한 억압과 통제를 뚫기 위해서는 젊은층의 창의적 검열 회피 방식이 필요하다”면서 2030세대가 백지행동을 통해 시위 중심에 서게 된 배경을 분석했다.

● 中 경제침체로 취업난 직면

중국 2030세대가 사회에 진출할 시점인 최근 몇 년 사이 제로 코로나 정책 등으로 중국 경제가 침체되면서 취업난과 생활고에 직면한 것도 원인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중국의 대졸자는 1076만 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청년층의 도시 실업률은 5월 기준 18.3%로 역대 최악의 취업난을 보였다. 중국의 대표적인 반체제 예술가인 아이웨이웨이는 28일 BBC 인터뷰에서 “경제가 무너지면서 학생들은 미래가 없고, 졸업생들은 직업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시위가 커졌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29일 “주링허우, 링링허우는 성장하면서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처럼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면서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절망은 더 컸다”고 전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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