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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음악 기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우주 열어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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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후 첫 앨범 피아니스트 임윤찬

조선일보

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첫 음반을 발표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바흐·모차르트·베토벤 등 피아니스트들에게 근본이 되는 작품들을 녹음하고 싶다”고 말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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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뿐만 아니라 모든 존경하는 피아니스트들이 느끼시겠지만 지금까지 스스로 만족한 공연이 없습니다. 사석(私席)이든 부모님 앞에서든 단 한 번도 만족한 적이 없었어요.”

28일 서울 연세대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간담회.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마이크를 잡고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 최연소 우승 이후 첫 음반 발매를 기념하는 자리. 하지만 지금까지 이뤄낸 성과에 대해 지독할 만큼 엄격하고 자기 비판적인 임윤찬의 말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날 간담회장에서도 ‘임윤찬 어록’이 또다시 쏟아졌다. 그는 “운 좋게 콩쿠르에서 1등을 하는 것이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저처럼 부족하고 미숙한 사람도 음악을 쉽게 들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다가가서 연주하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업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육원과 호스피스 병동을 실례로 들었다. 임윤찬은 “몸이 불편하신 분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을 직접 찾아가서 연주하는 것이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베토벤, 윤이상, 바버'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우승자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광주시립교향악단(지휘 홍석원)과 함께 유니버설뮤직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베토벤, 윤이상, 바버' 앨범을 발매했다. 2022.11.28/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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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연주라는 예술적 행위가 기부라는 물질적 행위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는 소신도 피력했다. 임윤찬은 “과학자나 수학자의 강의에서 제가 영감의 원천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음악을 통해서 또 다른 우주를 열어드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아이돌 같은 인기를 누리는 아직 10대 소년인데도, 수십 년은 산 듯한 애늙은이처럼 말하는 것도 임윤찬의 묘한 매력이다.

이번 음반에는 광주시향(예술감독 홍석원)과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담았다. 지난 10월 통영국제음악당 연주회의 실황 녹음이다. 지난해 임윤찬과 광주시향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처음 호흡을 맞췄고, 곧이어 이번 녹음까지 성사됐다. 지휘를 맡은 홍석원 감독은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할 당시에는 10대 청년의 질풍노도와 같은 에너지와 힘을 느낄 수 있었다면, 이번 ‘황제’에서는 슬프고 애절해서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2악장을 선보였다”고 격찬했다. 홍 감독은 임윤찬에 대해 “연주할 때마다 변할 수 있는 다양한 색깔을 지닌 천재”라고 평했다.

조선일보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베토벤, 윤이상, 바버'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홍석원 광주시립교향악단 지휘자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우승자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광주시립교향악단(지휘 홍석원)과 함께 유니버설뮤직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베토벤, 윤이상, 바버' 앨범을 발매했다. 2022.11.28/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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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임윤찬의 스승인 피아니스트 손민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내년 가을부터 미국 보스턴의 명문 뉴잉글랜드 음악원(NEC) 교수로 부임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현재 한예종 2학년인 제자 임윤찬 역시 스승을 따라서 미국행을 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음악계 안팎에서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내년에 어디에 간다’고 섣불리 이야기하면 그 약속을 못 지킬 수도 있다”면서 일단 유보적인 자세를 보였다.

운을 떼기 전에 한참 뜸을 들이지만, 한번 입을 열면 거침없이 소신과 강단을 보이는 것도 임윤찬의 특징. 다음 달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콩쿠르 우승 기념 독주회를 앞두고도 참가 당시 연주곡을 들려달라는 청이 있었지만 대번에 거절했다. 그가 “콩쿠르 때 힘들게 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시 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자 취재진 사이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음반 계획을 묻자 그는 “쇼스타코비치의 ‘전주곡과 푸가’ 전곡, 라흐마니노프의 연습곡 등 작곡가들에게 뿌리가 되는, 하지만 지금껏 많이 녹음되지 않은 곡들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아가 ‘피아노의 구약 성서’로 불리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신약 성서’로 꼽히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 모차르트의 협주곡 전곡(27곡) 등 녹음하고 싶은 곡이 이어졌다. 그는 “음악의 신(神)만이 할 수 있는 것들, 피아니스트로서 꼭 해야 하는 근본”이라고 말했다. 언뜻 수줍게 보이지만 속에 감춘 음악적 욕심만큼은 한도 끝도 없는 것 같았다.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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