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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한반도는 예외’라는 지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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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비무장지대 근처에는 지뢰 경고판이 곳곳에 있다. 권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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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방혜린 | 전 군인권센터 활동가·예비역 대위

냉전이 끝나고 세계대전과 핵전쟁의 위협이 줄어들자 인류는 더는 종말과 비인간적인 파괴에 두려워하지 말자며 많은 것을 다짐했다. 1997년 12월3일 캐나다 오타와에서의 약속도 그랬다. 이날 121개국이 대인지뢰의 사용, 비축, 생산, 이전 금지 및 폐기를 서약했다.

당시 정부는 대인지뢰 사용을 금지하는 ‘오타와 협약’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고수했다. 철책을 맞댄 채 북한의 침략 위협이 상존하는 한 한반도에서는 인명을 살상하는 지뢰 사용을 예외로 한다는 것이 한·미 두 나라의 공통된 입장이었다. 당시 보도를 보면, 국방부는 모의 전투실험 결과 비무장지대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할 경우에는 ‘방어 공백’을 메우기 위해 2만명 이상 병력이 추가 배치돼야 하고, 한국에서 지뢰가 매설된 곳은 민간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비무장지대여서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 달리 민간인 피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왜 오타와 협약을 맺었던 것일까? 이는 대인지뢰가 가지고 있는 은밀성과 무차별성 때문이다. 포탄과 미사일, 총은 아군이 적군을 겨냥해 사살하는 무기다. 공격받는 쪽에서는 공격을 예측하거나 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지뢰는 다르다. 일단 땅에 묻으면 눈으로 식별할 수 없고, 건드리면 폭발한다. 적인지 아군인지,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구별하지 않는다. 다만 터질 뿐이다. 대인지뢰의 사용과 생산 금지 활동을 벌이는 비정부기구(NGO) ‘지뢰금지국제운동’(ICBL)은 대인지뢰 모니터링 보고서를 통해 2020년 한해만 전세계에서 지뢰로 7073명이 숨지거나 다쳤으며 이 가운데 80%는 민간인이라고 보고했다.

한국에는 아직도 여의도 면적의 44배인 128㎢ 규모 지뢰 매설지대가 존재하고 이곳에 지뢰 약 82만8천발이 매설돼 있다. 당시 국방부 설명과 달리 지뢰는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을 벗어난, 심지어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인 서울, 인천, 부산에도 곳곳에 매설돼 있다. 국방부가 2020년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전국 후방지역 지뢰 매설지 40여곳 중 지뢰 제거가 완료된 데는 5곳에 불과하다. 남은 35곳에는 아직도 약 3천발의 지뢰가 숨어 있다. 더 무서운 건 지뢰가 고정돼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큰비가 내리면 토사에 휩쓸려 움직이기 때문이다. 전방지역에는 매설 규모를 파악할 수 없는 미확인 지뢰지대가 202곳이나 존재한다. 전체 지뢰지대의 84%이다. 움직이는 지뢰는 아군과 민간인에게 더 큰 위협이 된다.

그렇다면 국방부는 왜 민간인 피해자가 없다고 국제사회에 보고했을까? 통계가 ‘0’이기 때문이다. 민간인 지뢰 피해자 통계는 국방부가 아니라 민간단체나 지방자치단체의 주먹구구식 통계로만 잡힐 뿐이다. 지뢰가 휩쓸려 와도 사유지 주인이 사비를 들여 지뢰제거 작업에 나설 수도 없다. 법령에서 지뢰 관리와 제거는 군이 전담하도록 정해두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관리 권한을 군이 가지고 있지만, 정작 군에서 매설한 지뢰가 쓸려 내려가 민간인 피해자가 발생해도 통계조차 잡지 않는다. 이 모든 피해는 ‘상존하는 북한의 위협’이라는 안보 상황으로 용인되고 만다. 국방부가 조명희 의원(국민의힘)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21년까지 최근 지난 10년간 군에서 발생한 지뢰사고 피해자는 19명이다. 국민권익위 자료를 보면, 비슷한 시기 민간인 피해자는 경기도에서만 20명이었다.

올 10월에도 지뢰사고로 군인 두명이 크게 다쳤다. 지난해 국민권익위는 국방부에 안보상 불필요한 지뢰 매설 정보는 공개하고 국제지뢰행동기준(IMAS)에 맞춰 지뢰를 제거하고 통제, 지원할 수 있도록 법령을 제정할 것을 권고했다. 관련 법률은 지난해 입법예고됐지만, 제정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한편 미국은 6월 전세계에서 대인지뢰 사용을 금지할 것을 발표하며 이번에도 한반도는 예외로 뒀다. 북한을 막기 위한 안보와, 아군과 민간인을 살상하는 안보 사이의 간극이 언제쯤이나 메워질 수 있을지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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