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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매경데스크] 정치화된 친환경, 이상한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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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기현 ◆

매일경제

커피와 설탕. 두 음식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 다름 아닌 흑인들의 땀과 피다.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중동·튀르키예를 거쳐 십자군전쟁 때 유럽에 전해진다. 유럽은 커피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남미에 식민지를 개척한 유럽은 그곳에서 커피를 대량 생산하고자 아프리카 흑인을 동원했다. 커피에 '니그로(negro·흑인 노예)의 땀'이란 별칭이 붙은 배경이다.

브라질이 세계 1위 설탕 생산국이 된 것은 그곳에 수많은 사탕수수밭이 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식민지였던 브라질에 아프리카 노예들을 데려가 사탕수수를 재배시켰다. 백인들이 달콤한 설탕맛에 취해 가는 사이 노예들은 밭에서 핍박받고 죽어갔다.

친환경 산업의 총아인 전기차에도 슬픈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선 코발트가 필수다.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은 전 세계 코발트 공급의 70%를 책임진다. 그런데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 중 수만 명이 어린이다. 광부들은 수시간 동안 땅을 파고 바위를 깨가며 코발트를 채취한다. 그 과정에서 해마다 수십~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살아남은 사람도 심각한 폐 손상·피부질환에 시달린다.

'친환경'이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떠오른 이후 곳곳에서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자국 내 화석연료 사용을 억제했다. 그러다 휘발유 값이 폭등하자 사우디아라비아에 증산을 요청했다. 하지만 사우디는 거꾸로 감산을 발표한다. 미국이 혈맹인 이스라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란과 핵협정 복원을 추진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도 이란의 휘발유다. 미국선 화석연료 생산을 억제하고 타 지역에선 생산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모순된 행보다.

유럽에선 농축산업 규제 움직임이 강하다. 소의 방귀와 트림에서 나오는 암모니아·메탄이 대기오염 주범인 만큼 이를 억제하겠다는 얘기다. 네덜란드의 경우 농가 30~50%가 폐업 위기라고 한다.

목축이 금지되면 당연히 스테이크 등 육식 공급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때마침 식물로 만든 대체육 시장이 뜨기 시작한 건 우연일까. 최근엔 부족한 단백질 보충을 위해 소고기 대신 곤충 섭취도 권장되고 있다.

이윤 추구가 기본인 기업에 이익 공유를 강조하는 ESG 역시 기존 상식을 뒤엎는 친환경 어젠다의 대표적 현상이다.

환경은 당연히 중요하다. 우리의 터전인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정치와 연결될 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환경은 한 나라에 국한된 이슈가 아니다. 따라서 글로벌 어젠다로 내세우기가 매우 용이하다. 환경이 국제정치와 밀접해지는 순간 특정 국가, 기업은 물론 개인의 삶까지 옭아매는 '통제 기제'로 변질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그러한 전조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환경문제는 철저하게 정치가 아닌 과학적 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 지구는 탄생 이후 빙하기와 간빙기를 반복적으로 겪어 왔다. 현재는 간빙기다. 따라서 기온 상승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일부 환경론자들은 속도를 지적한다. 과거 간빙기엔 수만 년에 걸쳐 기온이 5~6도 오르며 천천히 북극이 녹고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빙하기로 이어졌다. 반면 지금은 급격한 산업화 여파로 탄소배출량이 급증했고 최근 단 100년 만에 지구 평균 온도가 1도 올라갔다는 것이다. 이런 속도라면 머지않아 인류가 멸종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기원전 1만년 전 영거 드라이아스 시기 땐 평균 기온이 10년에 10도 올랐다. 1600년 전엔 35년 만에 2도나 오른 적도 있었다. 보다 면밀한 과학적 토론이 필요한 이유다.

[남기현 벤처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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