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금융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국내 금융사가 외화로 발행해 싱가포르 거래소 등에 상장하는 채권의 발행, 조기 상환, 차환 등은 기획재정부 등 외환당국과의 협의가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외화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외형적으로는 개별 금융사의 경영상 판단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지만 환율, 국가신용도 등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실제로는 외환당국이 깊게 개입한다는 것이다. 금융당국도 외환당국의 결정에는 크게 반대하지 못한다고 한다. 외환 업무는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 소관이다.
신종자본증권은 발행사의 자본으로 분류되는 만기 30년 이상 채권이다. 단 투자자들은 통상적으로 5년인 최초 콜옵션 행사 가능 시점에 발행사가 조기에 상환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 시장 관계자는 “콜옵션 미행사가 미국, 유럽 등에서는 크게 문제 되지 않지만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다르다”면서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왜 자본성증권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은 사례가 두 번에 그쳤겠냐”고 말했다. 국내 금융사의 콜옵션 미행사는 우리은행이 2009년 금융시장이 경색되자 외화 후순위채 조기상환을 하지 않은지 13년 만이다.
흥국생명은 2017년 11월9일 발행물의 콜옵션 시점이 도래하자 3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과 1000억원의 원화 후순위채 발행으로 차환을 준비했다가 지난 10월31일 발행계획을 철회했다. 이자는 급등했고 국내 채권시장 수급요건은 악화한 만큼 금리를 올려서라도 5년 전 발행물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재설정 조항(5년 미 국고채 금리+연 2.472%포인트)에 따라 금리가 연 4.475%에서 약 6.7%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에서는 외환당국이 흥국생명이 콜옵션을 행사해 5억달러가 빠져나가 환율이 급등할 것을 우려해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 요청을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외환당국은 최근 국민연금과 외환스왑을 맺는 등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요가 생기는 것을 극도로 막고 있다.
반면 콜옵션 미행사에 대한 부작용은 적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외 투자은행(IB)이 연말을 앞두고 북클로징(회계장부 마감)을 해 투자수요가 적을 것으로 예상되고, 국내 보험사의 다음 대규모 콜옵션 시점은 내년 4~5월에나 돌아와 자본총계 기준으로 생명보험업계 6위(1조9719억원)인 중형사의 조기상환권 미행사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봤다는 것이다. 아울러 2009년 우리은행의 후순위채에 없던 금리 재설정 조건이 흥국생명의 2017년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에는 돼 있는 만큼 금리차익을 얻게되는 투자자들의 반발도 크지 않으리라고 봤다는 추정도 나온다.
하지만 흥국생명이 콜옵션을 미행사 한 뒤 국내 금융사가 발행한 외화표시채권의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가 국내 채권에 대한 신뢰를 잃게 했던 것처럼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는 외화표시 한국물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트리거(방아쇠)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대형보험사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중형사 한 곳이 이자 비용을 줄이게 됐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보험사 전체가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정부가) 큰 그림에서 일단 콜옵션을 행사하게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외환당국은 달러 표시 한국물이 동시에 발행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사전 조율은 하지만 한국물을 발행할 지 안할지에 대한 사전동의 절차는 없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우리도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를)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흥국생명이) 콜옵션 행사를 안했다고 우리가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상환재원이든, 자본영향이든 기본적으로 금융당국이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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