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이 불붙인 강달러에 이어 중국 리스크까지 더해지며 원화값을 끌어내린 것이다. 고물가 압력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내외 변수가 잇따르며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방정식도 더 복잡해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폐막식에서 당장 수정안 투표를 위해 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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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전날보다 6.6원 오른(환율 하락) 달러당 1433.1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원화값은 전날보다 4.3원 내린(환율 상승) 달러당 1444원에 거래를 시작한 뒤 장 초반 달러당 1444.2원까지 밀렸다. 장중 기준으로는 2009년 3월 16일(1488원) 이후 13년 7개월 만에 가장 낮다. 다만 장 후반에는 외환 당국의 개입으로 추정되는 달러 물량이 쏟아지며 원화가치가 오름세로 돌아서며 상승 마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
이날 원화가치가 장중 연저점을 찍은 건 세계금융시장을 휩쓴 ‘차이나런’ 때문이다. 이날 상하이 외환시장에서 위안화값은 달러당 7.3084위안으로 2007년 12월 이후 가장 낮았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원화와 위안화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많다. 외환거래 규제가 많은 위안화 대신 원화를 사고팔면서 원화가 위안화의 프록시(proxy·대리) 통화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15일 가파른 원화가치 추락 원인에 대해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가 크게 절하되면서 원화의 평가절하 속도가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시진핑 1인 체제에 따른 중국 경제리스크와 (중국이) 시장 친화적이지 않은 정책을 고수할 것이란 전망에 위안화가 꾸준히 약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게 됐다. 중국 경제의 하방 위험이 커지면서다. 한은은 지난 7일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전망 및 경제적 영향’ 보고서를 통해 “시진핑 주석의 영향력이 공고해짐에 따라 제로 코비드, 부동산 부문 디레버리징(부채 감소) 등 현 정책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며 “대만 갈등과 미·중 분쟁은 보다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중국 경제 성장에 하방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미·중 무역갈등으로 인해 반도체와 배터리 등의 수출 문턱이 높아지는 것도 부담이다.
시진핑 3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단 그래픽 이미지. |
한국의 수출에서 대(對)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5%다. 주요국 중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한국 수출과 가장 상관관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꺼지는 수출 동력에 시진핑 3연임과 그에 따른 중국 경제의 하방리스크 확대가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하고 경상수지 흑자 폭이 줄어들면서 원화가치 약세를 더 부추길 수 있다.
한은의 통화정책 방정식은 더 복잡해졌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다음달 24일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열고 기준금리 인상 등을 결정한다. 금리 인상은 상수지만 인상 폭은 오리무중이다. 한은이 10월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을 때와 비교해 국내 경제지표나 미국 등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각종 변수가 고개를 들고 있어서다.
물가 상승 압력은 여전하다. 5%대 고물가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물가 상승을 장기간 끌고 가는 요인인 기대인플레이션도 석 달 만에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10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4.3%로 지난달보다 0.1%포인트 올랐다. 기대플레이션율은 지난 7월 역대 최고치인 4.7%까지 치솟은 뒤 8월(4.3%)과 9월(4.2%) 등 두 달 연속 하락했다.
한·미 간 금리 차도 여전하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연 3%)와 미국의 기준금리(연 3~3.25%)의 차이는 상단기준으로 0.25%포인트다. 시장전망대로 Fed가 다음 달 1~2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할 경우 금리 차는 1.0%포인트까지 벌어진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
원화가치의 불확실성도 커졌다. Fed 긴축발 강달러로 주요국 통화 약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위안화의 추락이 더 가팔라지면 원화 가치를 더 끌어내릴 수 있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위원은 “중국 리스크로 세계금융시장과 원화의 변동성이 커진 건 맞다”면서도 “중국 리스크가 주변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만큼 커질지, 내부적인 정치 리스크로 끝날지 등 향후 경로에 따라 파급력이 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긴축의 부작용도 한은에는 부담이다.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불안으로 회사채와 단기기업어음(CP) 금리가 급등하고 있다. 정부가 ‘50조원+α’ 규모의 시장안정조치를 내놨지만 자금 경색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더 빠르게 올릴 경우 금융시장 불안이 더 커질 수 있다.
금융권에서는 한은이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를 통해 직접 유동성을 공급해달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중국의 경기 둔화까지 겹친다면 경기 침체 속도는 빨라질 수도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Fed의 11월 자이언트스텝이 상수인 만큼 한은이 빅스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맞다”면서도 “채권시장 불안, 중국발 경기 둔화 리스크 등 금리를 급격하게 올리지 못하는 요인도 잠복해 있어 금리 인상에 대한 변수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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