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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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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슬픔을 '굿'으로 위로하다…'공허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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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행복은 아픔과 직면할 때 가능…인간, 변화 순응 능력 있어"

다국적 예술가들의 몸짓으로 풀어내는 연대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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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일 공동 창·제작 무용 '공허와의 만남'(Picture a Vacuum)의 예술감독 슈테파니 티어쉬. ⓒ송인호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제공)


(광주=뉴스1) 조재현 기자 = "아픔과 슬픔을 외면하려고만 하지 말고, 마주 서서 치유하고 풀어가는 게 중요해요."

지난 14~15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예술극장에서 초연한 한국-독일 공동 창·제작 무용 '공허와의 만남'(Picture a Vacuum)은 상실·비탄의 감정을 슬픔의 영역에만 내버려 두지 말고 새로운 에너지로 승화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ACC 국제 공동 창·제작 사업 선정작으로,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와 무용·음악·비디오 아트 등 융합예술을 추구하는 독일 무부아르(Mouvoir) 무용단이 협업해 만들었다. 창·제작 과정에 황해도 무형문화재 만구대탁굿 전승교육사인 민혜경 만신(무녀를 높여 이르는 말)과 창작무용가 장혜림이 함께했다.

'공허와의 만남'은 전 세계 문명의 관점에서 바라본 상실의 상태를 무용으로 풀어내는 실험적 성격의 작품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비탄적 정서인 '한'과 전통 의식인 '굿'에 초점을 맞췄다.

무대에는 민혜경 만신과 장혜림, 독일에서 활동하는 무용수 김경무, 장구재비 이동균 외에도 마르타 마브로이디, 가라이오 에스나올라, 줄리엔 페란티, 마농 파랑 등 유럽 출신 예술가도 오른다.

국적이 각기 다른 예술가들은 무용과 노래, 소리, 제의(祭儀) 등 자신이 천착해온 분야로 애도의 개념과 슬픔의 의미 등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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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와의 만남' 공연 장면. ⓒ옥상훈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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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와의 만남' 공연 장면. ⓒ옥상훈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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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이나 비탄의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다. 울부짖으며 분노하기도 하고, 때론 침묵하거나 구슬픈 노랫말, 소리를 내뱉기도 한다. 무대 위에서 흩어졌다가도 어느새 한데 뭉쳐 죽음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보편적인 공허함을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이 작품의 예술감독이자 연출을 맡은 슈테파니 티어쉬는 최근 ACC 예술극장에서 <뉴스1>과 만나 "죽음을 갑자기 맞이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비탄과 슬픔을 살아있는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었고, 이런 마음이 작품의 출발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의나 노래, 무용 등 다양한 요소로 이뤄지는 서사를 통해 관객을 실제 슬픔에 빠지게 만들고자 했다. 티어쉬 예술감독은 "아픔과 슬픔의 감정을 무조건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려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 만신의 무가로 떠나는 자 축복하고 남은 자 위로하다

이 작품은 지난 2일 폐막한 제25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시댄스)에서 무부아르 무용단이 선보인 '헬로우 투 엠티니스'(Hello to Emptiness)와 형식적 구성에서 유사성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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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와의 만남' 공연 장면. ⓒ옥상훈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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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차이는 실제 무당이 등장해 제의를 선보이는 것이다. 민혜경 만신은 작품 곳곳에서 무가(巫歌)를 선보인다.

'너무 보고 싶어, 못 살겠어'

도입부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만신의 노래는 극의 전체적인 성격을 설명하는 동시에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티어쉬 예술감독은 "한국 사람들이 비탄의 감정을 풀어내는 방식에 대해 궁금하던 차에 '무당'과 '굿'의 존재를 알게 돼 실제 만신을 출연시켰다"며 "관람객이 '공허와의 만남'을 작품으로 받아들일지, 제사 의식으로 받아들일지 고민하기도 했지만, 다양한 요소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제 가면 다시 올 길 막연하구나/ 저승 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이로다/ 남은 세상 잘 살아라 고마웠고 사랑했다/ 아니 가면 안 되느냐 가기 싫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눈물 나면 눈물 흘려/ 아가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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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와의 만남'에서 민혜경 만신이 선보이는 수왕천가르기. ⓒ옥상훈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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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가 이 작품의 백미다. 만신은 저승길을 의미하는 수왕천을 몸으로 직접 가르며 저승으로 떠나는 자를 축원하고 남은 사람들을 위로한다. 이 대목에서 만신의 노랫말과 춤사위는 처연하면서도 따뜻하다.

티어쉬 예술감독은 "아픔과 슬픔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 종착역에는 행복이 있어야 한다"며 "아픔을 승화해 행복의 감정으로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작품에서 상실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이유는 뭘까.

"슬픔이나 상실에 직면했을 때 인간에게는 그 변화에 순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싶어요. 이런 힘이 모여 인류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cho8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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