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미국 팝 아이돌 그룹. 그러나 현재는 명맥이 끊겼고, 그 틈새를 K팝이 차지했다. K팝 기획사들은 앞으로 보다 본격적으로 이 시장을 잡는다는 계획이다. 오디션을 통한 멤버 공개 모집과 혹독한 트레이닝, 소속사의 철저한 기획으로 요약되는 K팝 제작 시스템이 팝의 본고장으로 건너가 어떤 성과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지난 4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콘서트. 미국 시장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소속사들은 현지에서 K팝 아이돌 그룹 제작에 나섰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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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성공 요인, 매니지먼트·오디션”
K팝의 미국 시장 공략이 본격화되고 있다. 과거의 해외 진출과는 다르다. 국내에서 성공한 아티스트를 ‘수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지에서 멤버를 뽑아 훈련한 뒤 데뷔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미국 현지 아이돌 그룹은 내년에 속속 데뷔할 예정이다.
하나증권은 17일 보고서를 통해 K팝 시스템으로 데뷔한 아이돌이 미국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K팝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첫 번째 요인은 매니지먼트 시스템의 차이다. 음반 기획 및 마케팅부터 굿즈 제작과 팬덤 관리까지 전담하는 K팝 소속사와 달리 미국엔 활동 중개인으로서 에이전시와 음반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레이블이 분리돼 있다. 어린 연습생을 훈련시켜 한 명의 아티스트로 키워내는 과정 역시 K팝에만 존재하는 체계다. 이미 스타성과 음악성을 갖춘 개인이 회사와 계약해 데뷔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미국에서 소속사에 대한 충성심을 갖춘 팀이 나오기 어려운 이유다.
2017년 발매된 한 K팝 아이돌의 앨범. 포토카드, 포스터 등이 들어있는 앨범 구성 내용. 앨범 패키지의 내용과 형태를 무작위로 다양하게 해서 팬들이 여러 장을 사도록 유도했다. 사진 예스24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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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상품을 끊임없이 내놓는 ‘기획력’도 K팝 매니지먼트 시스템의 장점이다. 앨범마다 패키지 구성을 다르게 해 종류별로 수집하게 하거나 팬 콘서트·영통팬싸(영상 통화로 진행하는 팬 사인회) 등 다양한 이벤트로 팬들의 지갑을 여는 전략이 미국엔 없다. 한국의 경우 소속사가 아티스트 지식재산권(IP)을 소유하고 있어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2차 판권 사업을 벌이기에도 용이하다. 어린 팬들을 상대로 한 상술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기업 입장에선 마케팅 전략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보고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차이도 K팝과 미국 팝 시장을 구분 짓는 요소로 꼽았다. 2000년대 이후 미국에서도 아티스트의 팬덤을 미리 모아 데뷔시킬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아메리칸 아이돌’, ‘디 엑스 팩터’ 등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했다. 걸그룹 피프스 하모니(Fifth Harmony)처럼 개인으로 출전한 지원자들이 오디션 과정에서 팀을 꾸려 데뷔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결성된 팀이 오래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취지가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될 사람을 뽑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걸그룹 트와이스를 탄생시킨 ‘식스틴’, 보이그룹 위너가 결성된 ‘윈: 후 이즈 넥스트’ 등 그룹을 만드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인 프로그램과는 결과물이 다를 수밖에 없다.
걸그룹 트와이스는 멤버 선발 오디션 프로그램 '식스틴'으로 데뷔했다.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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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그룹 제작 나선 소속사들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는 미국 유니버설뮤직그룹(UMG) 산하 게펜 레코드와 협업해 글로벌 걸그룹을 선보일 예정이다. 하이브가 아티스트 선발과 육성, 팬 콘텐트 제작 등을 맡고 게펜 레코드가 마케팅과 글로벌 유통을 담당한다. 지난 3~4월에 오디션이 진행됐고, 선발된 멤버는 하이브 미국 현지 법인에서 데뷔 준비에 들어간다.
‘걸그룹 명가’ JYP도 미국 시장을 겨누고 있다. JYP는 UMG 소속 리퍼블릭 레코드와 함께 영어권 국가에서 활동할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 ‘A2K’(아메리카 투 코리아)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9월 박진영 대표가 미국에서 열리는 오디션 참석을 위해 추석 연휴도 반납하고 출장길에 오르기도 했다.
SM의 ‘무한확장 보이그룹’ NCT도 미국으로 무대를 넓힌다. SM은 미국 영화 제작사 MGM과 합작해 오디션 프로그램 ‘K팝 할리우드를 가다’를 선보일 예정이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21명의 연습생은 서울 SM 본사에서 트레이닝 받으며 최종 우승자를 가리기 위한 경쟁에 돌입한다.
SM은 미국 영화 제작사 MGM과 손잡고 보이그룹 'NCT 할리우드'의 멤버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왼쪽부터 이수만 SM총괄프로듀서, 마크 버넷 MGM 프로듀서. 사진 SM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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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팝의 본고장까지 영토를 확장하려는 K팝의 행보에 ‘꽃길’만 펼쳐지리란 보장은 없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기훈 하나증권 연구원은 “아직 결과물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단언할 순 없지만, 미국은 아티스트 계약 등 법 조항이 한국보다 엄격하다”며 “‘7년 계약’ 같은 K팝의 관행이 미국에선 용인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치적으로 민감한 인종 문제 등도 소속사 입장에서 대비가 어려운 이슈”라고 덧붙였다.
박건 기자 park.k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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