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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격한 정쟁을 벌이고 있다. 서로에게 쏟아낸 표현들 몇 개만 보자. "악령이 자라고 있다" "도둑이 몽둥이 들고 설친다" 등이다. 서로를 향해 여론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까지 한다. 이쯤 되면 정당과 정당의 경쟁이 아니라 상대를 적으로 돌리는 진영과 진영의 격돌이다. 그나마 순화해 표현하면 '말의 전쟁'이다.
그런데 막상 유권자인 국민들은 죽기 살기로 싸우는 정당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지율이란 숫자로 살펴보자. 한쪽이 눈총을 받으면 반사효과가 일어나 다른 쪽이 그만큼 인기를 얻는 게 정치판의 통례였다. 하지만 웬걸. 요즘은 이 통념에서 벗어났다.
한국갤럽 기준으로 10월 1주 차(4~6일)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은 32%를 기록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에 그치는 상황인데,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야당의 지지율이라기엔 어색할 정도로 낮다. 그러고 보니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한 달 이후부터는 계속 하락세였지만 민주당은 같은 기간 줄곧 30%대에 잡혀 있었다. 반사효과가 없는 거다.
여당인 국민의힘 역시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갤럽 10월 1주 차 조사에서는 33%였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엔 40%를 훌쩍 넘겼지만 요즘 와서는 뚝 떨어졌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도 당의 지지율은 버텨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동반 하락하는 모습이다.
두 거대 정당이 이처럼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은 늘고 있다. 윤 대통령 취임 즈음엔 10% 후반에 그쳤지만 이제는 30%에 육박한다.
정당 지지율은 왜 이런 모습인 걸까. 오랜 경험을 통해 많은 사례를 지켜봐온 정치권 몇몇 '고수들'의 생각을 빌려 설명해 본다.
무엇보다 대선 때 후보들에게 보였던 비호감이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이어지고 있다는 점, 정당들이 해소되지 못한 이 상황에 잡혀 있다는 점이다. 대선 당시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면 후보였던 윤 대통령이나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 모두 비호감도가 높았다.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응답이 60%를 넘기는 조사도 있었다. 후보마다 갖가지 논란과 의혹 제기가 끊이질 않았던 탓이 크다.
그렇다 보니 특정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쟁 후보를 선택하는 상황에 놓인 유권자들이 많았다. 적극적 지지가 아니라 마지못해 선택을 한 거다. 당선시키기 위한 투표가 아니라 떨어뜨리기 위한 투표를 한 유권자가 상당수였다는 거다. 그리고 대선은 0.73%포인트라는 초박빙의 차이로 결판이 났다.
여도 야도 똘똘 뭉쳐 오직 공격 앞으로
여당인 국민의힘부터 보자.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기대와 지지를 한 몸에 받는 '허니문 효과'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초박빙의 대선 승부가 났다는 점에 더해 취임 이후에도 논란이 줄줄이 불거지면서 '허니문' 기간 자체가 없었다. 대통령실 이전과 장관·대통령실 직원 인사 논란이 불거졌고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은 잦아들기는커녕 갈수록 더했다. 여기에 몇 가지 정책을 둘러싼 혼선도 있었다. 게다가 이준석 전 대표의 징계와 뒤이은 '도돌이표' 가처분신청은 당의 혼란을 더했고 청년 지지층의 이탈을 불러왔다. 이보다 더 깊은 수렁이 있을까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윤 대통령의 영국·북미 순방에서 불거진 각종 논란에 대해 국민의힘이 단일대오를 외치며 '엄호'에 돌입했다는 거다. 논란을 해소하고 해법과 변화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엄호에 급급했다. 위기감에 사로잡혀, 무너질까 급급해하며 눈앞의 논란을 넘어가기에만 바쁜 모습으로 비쳤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여당으로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막는 지지대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는 동반 하락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20%대 지지율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란 최악의 상황에서 치른 대선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가 얻은 득표율 24.03%와 비슷한 수준이다. 콘크리트 보수 지지층의 비율로도 볼 수 있다. 지금 모습이라면 국민의힘 지지율도 이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다.
다음은 제1야당인 민주당이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하루 이틀의 얘기가 아니었다. 대선 경선 때는 당 안에서 강하게 문제 제기가 있었고, 대선 본선에서는 경쟁 후보 진영의 단골 공격 대상이 됐다. 대선 본선에서 민주당은 방어와 옹호를 하기에 바빴다. 그런 이 대표가 대선에서 진 뒤에 곧바로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이 됐고, 이어 전당대회를 통해 당대표에 올랐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는 논리가 모든 것을 압도했다. 이 대표 말고 당을 끌고 갈 다른 대안 인물이 있느냐는 주장도 힘을 얻었다. 이 대표 체제를 막기 위해서 친문(친문재인) 의원들의 당대표 동반 불출마론, 97그룹(1990년대 학번, 1970년대생) 도전 등이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과는 '이재명의 민주당' 출범이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 그 사법 리스크가 구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대표를 둘러싼 다갈래의 수사가 검찰과 경찰에서 진행 중이다. 민주당은 야당 탄압, 억지 수사라고 비판하며 단일대오로 이 대표를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유권자들, 특히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은 대선 때 민주당 내부에서 나온 지적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당 전체가 사법 리스크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걱정 말이다.
여기에다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은 대정부 강경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단독 처리하는 등 지지층만을 위한 정치에 빠져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대안이 될 새로운 인물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대안정당이라는 기대도 끌어내지 못한 정당이란 비판을 피하기 쉽지 않다. 대선 때 거대 정당의 '비호감' 후보들 중 한 명은 대통령이 됐고, 다른 한 명은 다수당의 대표가 됐다. 그리고 두 정당은 각각 대통령과 당대표를 단일대오로 옹호하기에 급급하다. 대선 3라운드가 진행 중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1라운드는 대선, 2라운드는 지방선거). 그 과정에서 정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고, 정쟁에 능한 정치인들이 득세하며, 정당의 지지율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강성 지지층 의식한 승부만 판쳐
관건은 언제까지 이런 싸움판 정치가 이어질 것인가다. 이를 짐작하기 위해선 국회 의석 분포를 짚어봐야 한다. 여소야대 상황 말이다. 현재 299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민주당이 169명이고 국민의힘이 115명이다.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당이고 민주당 성향의 무소속 의원까지 합치면 180석에 육박한다. 법률안 통과 자체가 절대 다수당인 민주당의 동의가 없으면 안 된다.
여소야대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정부권력과 의회권력이 다르다'이다. 대선에서 이긴 국민의힘은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여당이다. 하지만 의회에서는 소수당이다. 반대로 민주당은 대선에서 진 야당이지만 의회에서는 다수당이다. 이 불균형이 툭하면 갈등과 대립, 정쟁과 격돌의 상황을 만들고 있다.
민주당은 법률안을 단독으로 강행 처리하고 있고,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끝났지만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박진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키기까지 했다. 다수당의 힘으로 무리수를 쓴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대항해 윤 대통령은 시행령(법률 하위 법령으로 정부가 정할 수 있다)으로 법률안 통과에 대응하고 있고, 장관 임명을 강행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해임건의안에는 거부를 했다. 강행과 맞대응이 반복되고 있다. 과거에도 정부권력과 의회권력이 다른 때가 종종 있었다. 당시에도 정쟁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상대를 적으로 여기며 증오·혐오하는 단계에 이르지는 않았다.
게다가 한 가지 의구심이 드는 지점이 있다. 정부권력의 정점인 윤 대통령이나 의회권력의 정점인 이 대표 모두 타협보다는 돌파를 선호하는 것 아니냐는 거다. 윤 대통령은 검찰에서 대통령으로 직행했다. 국회 경험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대선후보가 됐고 대통령에 올랐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정치인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는 얘기가 있다. 대통령실 참모로 정치인보다 검찰 출신을 선호한다는 지적을 받은 것도 이런 맥락과 연결된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쳤다. 추진력이 장점으로 꼽히는 정치인이다. 효율이 중요한 행정 분야의 경험은 많지만 국회에선 이제 초선일 뿐이다. 또 정치적 체급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주류인 친문 정치인들과 대립했다. 스스로는 변방장수라고 일컬을 정도로 비주류였다. 그렇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나 이 대표 모두 타협보다는 정면승부를 선호하는 듯하다. 정치적 난국의 해법을 찾을 때 타협이 아니라 대결을 선택하고 물러섬이 없는 승부를 벌이는 쪽을 선택하고 있다. 민생을 위한 타협이 아니라 지지층을 위한 승부다. 지금 여야가 제각각 단일대오로 극한의 정쟁을 벌이는 건 이런 배경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총선 뒤 권력일치냐 레임덕이냐
이런 이유들 탓에 극한의 정쟁은 쉽사리 사그라들기 어렵다. 그러나 변곡점은 있다. 2년 뒤인 2024년 4월 총선이다. 승리한 정당은 유권자의 신임을 흡수해 힘을 얻을 수 있고, 패배한 정당은 반성과 변화의 계기로 삼는 게 바로 선거 결과다.
만약 국민의힘이 확실히 승리할 경우 의회권력과 정부권력을 일치시킬 수 있다. 무늬만 집권여당인 상태에서 벗어나 정국을 진짜로 주도할 수 있다. 물론 야당이 계속해서 반대를 외칠 수 있지만, 대선과 지방선거에 이어 또다시 전국 선거인 총선에서 패배한다면 생존을 위해서라도 달라진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민주당이 2020년 총선에 이어 다시 한번 분명한 승리를 거둔다면 의회권력이 정부권력에 확실한 우위를 점하게 된다. 패배한 여당은 쇄신을 모색할 것이고 정부권력은 급격히 힘이 빠지면서 '레임덕'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다.
두 가지 시나리오 모두 정치적 힘의 우위가 한쪽에 나타나면서 정쟁이 잦아들 수 있다. 하지만 총선의 결과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비등비등한 의석을 차지해 승패가 애매하다면 말이다. 강성 지지층만 적극적으로 투표에 나서도 중도층이 투표를 외면하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때는 여야가 다음 대선을 바라보며 더 격렬하게 정쟁을 벌일 거다. 그래야 강성 지지층을 더 결집시킬 테니까. 중요한 변곡점인 총선까지 이제 18개월 남았다.
한편 정부권력과 의회권력이 자동적으로 일치되는 정치제도가 의원내각제다. 유럽 국가에서 보편화된 제도인데, 우리 정치권에서도 내각제 도입 필요성이 심심치 않게 제기돼 왔다. 하지만 개헌을 해야 가능한 일인 데다 여전히 국민 다수는 대통령을 직접 뽑는 걸 선호하는 듯하다. 더구나 국회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점도 내각제 도입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이상훈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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