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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돈 받는 사람마저 거부하는 무책임한 연금 정치 [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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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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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투입 비용대비 노인 빈곤 완화효과가 적은 우리 기초연금을 고쳐서 운영하라고 권고해서다. 지급 대상자는 줄이고, 취약 노인에게 더 지급해서, 높은 노인 빈곤율을 낮출 수 있도록 운영하라고 하였다.

권고안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정부·여당과 야당 모두 기초연금액 인상을 언급하고 있다. 연금액을 인상하는 각론에서는 정부·여당과 야당안에 큰 차이가 있다. 정부·여당은 노인 70%에게 지금보다 더 주겠다고 한다. 반면에 야당은 모든 노인에게 지금보다 더 주겠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가입자가 부담하는 보험료로 운영되는 제도가 아니라서 그렇다. 월급에서 직접 떼어가는 돈이 아니다 보니, 또 더 올려준다고 생색내기에 좋은 제도 운영방식이다 보니, 이처럼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대선후보 TV토론에서는 우리 정치사에서 의미 있는 장면이 있었다. 연금개혁에 합의하자는 안철수 후보 제안에, 윤석열·이재명·심상정 후보 모두 흔쾌히 동의해서다. 당시 쉬운 합의가 의아하기는 했었다. "그 어려운 연금개혁을 저리도 쉽게 합의할까?"여서 그랬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까지 1년도 걸리지 않았다. 하겠다던 연금개혁은 놔두고, 젊은 세대 등골 빼먹는 기초연금을 더 주겠다고 해서다. 노인 70%에서 모든 노인으로 확대하겠다고 해서이기도 하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중에서도 적지 않은 노인들은 젊은층보다 훨씬 더 잘 산다. 그런데도 왜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주겠다고 할까? 우리보다 훨씬 많은 세금과 보험료를 걷는 복지 선진국조차도 제도 유지가 어려워 포기한 제도를 말이다. 노인 표 더 얻겠다는 심사일 게다.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매표 수단으로 국민 혈세를 쓰겠다는 거다.

이러한 정치권 행태와 대조되는 필자의 최근 경험을 소개하고 싶다. 90세를 바라보는 김일천 전 복지부 국장의 외침이다. "윤 박사. 이러다 나라 망하겠어요.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는 개개인에게 부족한 만큼만을 채워주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모두에게 n분의 1로 똑같이 나눠주는 것을 보편적 복지로 잘못 알고 있어요." 정부 정책에 반대하다가 3번이나 쫓겨났었다는 전직 관료의 고언이다.

대한은퇴자협회(KARP) 주명룡 대표가 문자를 보내왔다. "윤 박사님. 어제 협회에서 기초연금 토론회를 개최했는데, 예상과 달리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기초연금 지급하는 것을 대다수가 반대했어요." 대신에 "시장에서 자력으로 일자리 얻기가 어려운 노인에게는 공공형 일자리를 제공하되, 일할 능력이 있는 대다수 노인에게는 시장형 일자리로 일할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인생 100세 시대에서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지 말고,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급여를 지급하는 시장형 일자리를 만드는 데 정치권이 신경 써달라"는 겁니다.

우리가 연금을 배워 온 일본 기초연금은 자신이 보험료를 냈어야만 받을 수 있다. 일본 노인의 70% 정도는, 정년 이전 급여의 30∼50% 수준을 받으면서, 정년퇴직 후에도 재고용되어 65세가 넘도록 일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우리 사회, 젊은 세대의 등골 빼먹는 기초연금 확대 대신에, 노인 대상의 시장형 일자리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사를 설득하는 데 정치적 역량을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나라를 생각한다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한심해도 너무 한심해서 하는 말이다.
한국일보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한국연금학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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