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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주춤하는 중국 반도체 인해전술…미국 포위망 뚫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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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비딥 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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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기와 미국 국기를 합친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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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명운을 건 미-중 간 ‘반도체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도전자’ 중국은 막대한 인력과 자본을 동원해 인해전술을 펴고 있고, 미국은 주변국을 동원하며 물샐틈없는 수성에 나서고 있다. 최근 중국 반도체 업체의 무더기 폐업과 심각한 내부 부패 등이 드러나면서 주춤하는 모양새지만, 거센 도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문닫는 반도체 업체 역대 최다…반도체 창업도 최다


지난달 1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중국 기업 통계 플랫폼 ‘치차차’를 인용해, 올해 1~8월에 업체나 브랜드 이름에 ‘반도체’가 들어간 중국 기업 3470곳이 사업 등록을 취소했다고 보도했다. 2020년엔 1397곳, 2021년엔 3420곳이 문을 닫았지만, 올 들어 8월까지 지난해 전체와 맞먹는 반도체 업체들이 폐업을 선택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중국의 ‘반도체 대약진 운동이 실패했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통계적 착시’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올 들어 폐업이 급증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창업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중국의 반도체 관련 창업 기업 수는 2019년 8442개, 2020년 2만3111개에서 지난해 4만7392개로 껑충 뛰었다. 올해 창업 기업 수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작년과 비슷하거나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현재 중국 내 반도체 관련 기업은 12만4천개에 이른다. 고영화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소 연구원은 “폐업하는 기업의 숫자가 느는 것은 맞지만, 이는 새로 생긴 기업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올해 중국의 전체 벤처캐피털 투자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도 1위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반도체 관련 기업의 창업이 많은 것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때문이다. 중국은 반도체 수입액이 원유 수입액을 넘어선 2013년부터 ‘반도체 굴기’를 본격화했다. 2014년과 2019년 두차례 각각 1390억위안(27조8천억원), 2040억위안(40조8천억원) 규모의 1·2차 ‘국가 반도체산업 투자펀드’를 조성했다. 1차 펀드는 반도체 기업 23곳에 투자했고, 2차 펀드는 지난 8월까지 전체 조성금의 3분의 1 정도인 790억위안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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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중국의 반도체 생산량은 크게 뛰었다. 2010년엔 58억달러(8조3500억원)에 불과했지만, 2021년엔 312억달러(45조원)로 5배 이상 늘었다. 중국은 올 1분기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에서 세계 점유율 10%를 차지했고, 7월엔 첨단 반도체로 분류되는 7나노급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대규모 석·박사급 인재들이 반도체 설계 등에 뛰어들어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만 2천여곳에 이른다. 반도체 조립·포장·테스트 분야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무려 38%에 이른다.

물론, 중국은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 2025’ 계획에서 2020년 반도체 자급률 40%, 2025년 7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하지만 2021년 기준 반도체 자급률은 16.7%에 그친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에서 외국 기업이 생산한 반도체를 제외하면 반도체 자급률은 5~6%대로 줄어든다.

아이폰14에 중국 반도체? 미 의회 “애플 불장난”


미·중의 반도체 경쟁은 전방위로 진행 중이다. 최근 맞붙은 전선은 애플이었다. 최근 이 회사가 중국에 판매되는 일부 아이폰14에 창장메모리(YMTC)의 낸드플래시 반도체를 탑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자, 마코 루비오 미국 연방 상원 정보위원회 부위원장이 9월11일 “애플이 불장난을 하고 있다. 만약 (이 계획을) 더 진전시키면 연방 정부로부터 전례 없는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애플의 결정보다, 이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미국 의회의 태도에 더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애플의 결정은, 미·중이 치열히 경쟁하고 있지만 양국 경제가 서로 떼놓기 매우 어려울 정도로 밀접히 붙어 있음을 보여준다. 시장조사 기관 ‘카운터포인트’ 자료를 보면, 애플 아이폰은 지난해 중국 시장 점유율 16%로, 중국 기업 비보·오포에 이은 3위였다. 전체 애플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로 추정된다. 애플이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려는 미국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첨단 반도체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생산 장비의 수출을 금지한 조처가 대표적이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램리서치 등 미국 기업이 중국 반도체 기업에 반도체 생산 장비를 판매하는 것을 금지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세계 유일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생산업체인 네덜란드의 에이에스엠엘(ASML)에 핵심 장비의 중국 수출을 막은 것이다. 노광장비는 파장이 짧은 자외선을 활용해 반도체 웨이퍼에 길(회로)을 새기는 역할을 한다. 특히, 7나노 이하 첨단 반도체를 만들려면 이 회사의 극자외선 노광장비가 필수적이다. 중국은 구형 노광장비로 7나노 반도체를 만들지만, 작업 효율이 떨어져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8월23일 네덜란드와 수교 50주년을 맞아 리커창 중국 총리가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화상회담을 하며 “협력을 강화하자”고 말하는 등 구애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은 나아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한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 구성도 서두르고 있다. 칩4는 반도체 생산에 강점을 가진 한국·대만, 원천 기술을 가진 미국, 소재·장비 분야 강국인 일본 등 네 나라를 묶어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자는 협의체다. 중국은 칩4가 “미국의 횡포”라며 강력 반발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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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웨이퍼.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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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반도체펀드’ 최고 책임자들 줄줄이 당국 조사


미국의 강력한 견제를 받는 가운데, 중국 내부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중국 정부가 야심 차게 진행한 국가 반도체펀드 사업에서 부패 행위가 적발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1·2차 합쳐 3400억 위안(68조원) 규모의 반도체 지원책을 내놓으면서 ‘기금 조성’과 ‘자금 집행’을 따로 분리해 서로 다른 주체(대기금, 화신투자)가 이를 맡도록 했다. 머리와 손·발을 나눠 효율성을 높이고 부패 가능성을 낮추려 한 것이다.

하지만 두 기관 임원들이 중국 공산당 사정기구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기율위)의 조사를 받고 있다. 지난 7월 딩원우 대기금 총재를 비롯해 최고위급 인사들이 줄줄이 당국의 조사 대상이 되면서 뒤숭숭한 상황이다. 게다가 반도체와 관련한 국가 단위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중국 국무원 공업정보화부의 샤오아칭 현 부장(장관)도 기율위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비위 행위를 저질렀는지 공개되지 않았지만, <블룸버그 통신> 등 서구 매체들은 “이번 대규모 사정은 부패와 비효율로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한 반도체 펀드에 대해 중국 지도부가 분노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앞서 지난 2020년에는 중국 반도체 굴기의 기대주로 20조원의 투자가 이뤄졌다고 홍보했던 우한홍신(HSMC)이 반도체를 하나도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파산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중국 정부로부터 2조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아 챙겼지만, 사실상 사기극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큰 충격을 줬다.

디램 격차 5년 유지…시진핑 3연임 땐 반도체 굴기 더 세질 듯


중국 반도체 산업이 안팎의 악재로 흔들리는 것은 한국에 좋은 소식이다. 미국의 집중 견제가 없었다면 중국이 한국의 반도체 기술을 따라잡는 속도가 훨씬 빨랐을 것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인 디(D)램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중국과의 격차가 5년 정도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낸드플래시의 경우 격차가 1~2년 정도에 불과하고, 자동차용 반도체 등 중간급 반도체 생산에선 중국 업체들도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시진핑 국가 주석이 이달 세번째 연임을 확정하면, 본인의 핵심 경제 정책인 ‘중국제조 2025’를 업그레이드해 더 강력한 반도체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 주석은 지난 6월28일 후베이성 우한의 한 반도체 관련 기업을 방문해 “기술 자립이 중국 번영의 토대이자 국가 안보의 핵심”이라며 “우리는 기술 생명줄을 우리 손으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경쟁은 이제부터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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