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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단독] 인허가 무기로…방송사 옥죈 文정부 방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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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문재인 정부가 방송사업자의 재허가·재승인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과거 정부보다 훨씬 더 많은 조건과 권고 사항을 내걸며 규제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방송사들이 민영 기업임에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정부의 역점 사업을 요구했으며 사업자들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3일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들어 지상파 방송 4개사(KBS·MBC·SBS·EBS)는 2017년 재허가 심사에서 조건과 권고를 총 122건, 2020년 심사에서 총 107건을 각각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방통위가 지상파 방송사업자에게 내건 조건과 권고 건수는 평균 114.5건이었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2013~2014년 지상파 방송 4개사 재허가 심사를 할 당시 총 72건의 조건과 권고 사항을 제시했다. 정부가 바뀌면서 조건·권고 사항인 '부관'이 약 59% 증가한 셈이다.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가 내민 조건과 권고 사항은 전임 정부 대비 2배 이상 급증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였던 2014년에 정부 측이 종편 4개사(MBN·TV조선·채널A·JTBC)에 요청했던 조건과 권고 사항은 총 31건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에 종편 4개사에 제시된 조건과 권고 사항은 총 72건에 달했다. 2020년 재허가·재승인 심사 작업은 현재 방통위원장으로 재직 중인 한상혁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이뤄졌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처럼 방송사업자에게 무더기로 조건과 권고 사항이 부가되는 상황은 법률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행정기본법 제17조에는 부관이 해당 처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일 것임을 규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방송사업자 재허가·재승인 제도는 이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통제 수단이기 때문에, 조건과 권고를 부가하는 것은 법에서 허용한 범위 내에서 필요한 최소한도로 그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같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과제 내용을 포함시킨 것도 문제점으로 분석된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재허가 심사 당시 모든 방송사업자에게 계약직과 파견직 등의 정규직화를 위해 노력하라고 권고했다. 또한 일자리 확대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2020년 심사 때는 방통위가 전체 방송사업자에게 비정규직 인력 현황과 근로 실태 파악을 위한 자료를 매년 4월 말까지 제출하라고 조건을 달았다.

재허가·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방송사의 인사·경영권을 과도하게 간섭하는 조건과 권고 사항이 붙기도 했다는 게 윤 의원의 설명이다. TV조선의 경우 2020년 재승인 심사 당시 '각종 내부위원회에 시민사회단체 등의 추천을 받은 외부인사를 포함시킬 것'을 권고 받았다. 일부 종편은 간부를 임명할 때 종사자 의견을 반영하라는 취지의 권고를 받기도 했다. 또 방통위는 2017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SBS에 사회공헌에 출연하는 금액을 '세전이익의 15%'로 하라는 내용의 조건을 부가했다. 윤 의원은 "문재인 정부 들어 방송사업자에게 무더기로 조건과 권고 사항이 부가된 건 민영 방송마저 장악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법적인 근거 없이 인사권과 경영권까지 침해하는 조건이 부가되는 건 행정 행위의 경계선을 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방송사를 규제하는 수단은 재허가·재승인이기 때문에 심사 기준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재허가·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내걸린 조건과 권고 사항이 정치적으로 남용되거나 악용될 소지가 충분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도연 국민대 교수는 "재허가·재승인 과정을 통해 정부가 방송사에 대한 그립을 단단히 쥐는 역할을 했다"며 "재허가·재승인증이 두꺼워졌다는 표현을 쓰는데, 경우에 따라선 방송사를 겁박하고 혼내는 수단으로 어느 정도 기능한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어 김 교수는 "재허가·재승인 제도가 정치색은 빼고 변화하는 방송 환경에 맞도록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게 매우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전문가는 영국 등 해외 사례를 들며 방송사업자와 규제기관 사이에 협상을 통해 조건을 부가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성욱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본부장은 "조건을 제시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강도, 횟수, 범위가 점점 넓어지는 것은 큰 문제"라며 "의도적으로 조건을 부과하지 않으려는 결단이 필요하다. 합의가 필요한 사항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희수 기자 / 박윤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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