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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번호로 가고 싶지만…"
TV를 보며, 채널을 돌릴 때마다 접하게 되는 게 바로 홈쇼핑이다.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낮은 번호대 채널인 20번대까지 채널 하나 걸러 하나 꼴로 홈쇼핑 채널이 자리 잡고 있다. 채널을 옮겨 다니는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홈쇼핑사업자들로선 최적의 자리인데, 최근 한 홈쇼핑TV 관계자는 '뒷 번호'로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다는 하소연을 내뱉었다.
홈쇼핑 매출 60% 차지하는 '송출 수수료'
노출이 많이 될수록 유리한 홈쇼핑TV 사업자가 '뒷 번호'를 언급하게 된 건 '송출 수수료'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송출 수수료는 홈쇼핑 방송을 송출 해주는 유료방송 사업자에게 내는 임대료다.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인터넷방송인 IPTV와 케이블TV, 위성방송사업자에게 채널 번호에 맞는 비용을 지불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최근 IPTV가 유료방송의 1위 시장으로 성장하면서 송출 수수료 부담이 특히 커졌다고 얘기한다.
국내 홈쇼핑 12개 사는 지난해 송출 수수료로 2조 2천억 원을 사용했다. 2017년 1조 3천억 원대에서 불과 4년 만에 1조 원 가까이 부담이 늘어났다. 하지만 홈쇼핑사업자의 매출 증가율은 그렇지 못했다. 2017년 3조 5천억 원대에서 지난해 3조 8천억 원대로 매출 성장은 더뎠다.
2017년 홈쇼핑사업자의 매출 대비 송출 수수료 비중은 40%도 채 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송출 수수료 비중은 60%에 육박했다. 홈쇼핑TV를 통해 물건을 팔고 받은 돈의 60%는 유료방송 사업자에게 돌아간 것이다.
IPTV, 사실상 송출 수수료로 '배 불리기'
매출의 60%가 임대료로 나가는 이상한 구조가 형성된 건 IPTV 때문이란 게 홈쇼핑사업자들의 설명이다. IPTV의 송출 수수료는 매년 가파르게 성장해 왔다. 2017년 4천890억 원이었던 송출 수수료는 지난해 1조 3천억 원을 넘어섰다. 최근 5년 사이 연평균 28.3%씩 송출 수수료를 더 받았다.
IPTV의 송출 수수료 증가에도 이유는 있다. IPTV가 유료방송 점유율을 최근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기 때문이다. 유료방송 전체 가입자는 지난해 3천5백만 명을 넘어섰다. 이 중 IPTV의 가입자 수는 1천9백만 명. 55%의 점유율로 2천만 가입자를 눈 앞에 두고 있다.
2018년 초 케이블TV 가입자 수를 역전한 뒤 케이블TV와 위성방송 가입자 수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데 반해 매년 8% 정도의 가입자 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말 그대로 가입자 수가 늘어나는 만큼 홈쇼핑사업자에게 받는 송출 수수료도 증가했다는 논리다.
하지만, 홈쇼핑 송출 수수료와 가입자 수를 비교해 봤을 때 그 논리는 약해진다. 매년 28%씩 증가한 송출 수수료, 반면 가입자 수는 8% 증가에 그쳤다.
IPTV 사업자가 송출 수수료로 배를 불리고 있다는 지적은 IPTV 사업자의 매출을 들여다보면 또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IPTV사업자의 방송매출 중 홈쇼핑 송출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16.7%였다. IPTV 가입자들로부터 받는 수신료 등 매출 비중은 70%에 달했다. 반면 2021년 방송매출 중 홈쇼핑으로 받는 송출 수수료 비중은 28.6%로 커졌다. 가입자들로부터 받는 수수료 등 매출은 58.6%로 하락했다.
홈쇼핑사업자들은 본질적인 사업보다 사실상 손쉽게 벌 수 있는 홈쇼핑 송출 수수료로 IPTV사업자들 매출이 성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IPTV사업자들의 매출은 2017년 2조 9천억 원에서 지난해 4조 6천억 원으로 성장했다. 홈쇼핑 송출 수수료 매출이 매출 성장의 절반을 책임진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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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기간 IPTV사업자의 최대 지출 분야인 콘텐츠 사용료에 대한 지출은 크게 늘지 않았다. 지상파, 종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PP사업자 등에게 지출하는 프로그램사용료 등 지출은 2017년 9천억 원에서 2021년 1조 2천억 원으로 매년 9%정도 씩 올랐다. 가입자 수 증가율과 비슷한 성장세다. 2021년 기준, 전체 프로그램 전송료 등 지출 1조 2천억 원은 홈쇼핑 12개사로부터 받은 송출 수수료 1조 3천억 원보다 적다. 홈쇼핑사업자에게 받는 임대료가 지상파, 종편, PP들에게 지급하는 사용료를 뛰어 넘은 것이다.
홈쇼핑사업자 매출 고려 없는 '송출 수수료' 산정 기준
IPTV 사업자들은 관리감독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승인 받은 산정 기준을 통해 송출 수수료를 인상해왔다는 입장이다. 전년도 송출 수수료에 유료방송 가입자 증감률과 평균 물가 상승률, 그리고 홈쇼핑사업자들과의 협상 조정 계수를 반영한 결과란 것.
하지만 홈쇼핑사업자들은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홈쇼핑 방송채널 사용계약 가이드라인'엔 불리한 송출 대가 강요를 금지하면서 홈쇼핑사업자의 매출 증감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고려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유료방송 90% 장악한 통신사들 관리, 감독은?
IPTV사업자가 가입자 수 증가를 이유로 홈쇼핑사업자로부터 송출 수수료를 가파르게 올릴 때, 가입자 수가 감소한 케이블TV, 위성방송사업자의 홈쇼핑 송출 수수료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홈쇼핑사업자의 송출 수수료 부담만 증가할 뿐 유료방송사업자들의 매출은 증가해온 것이다.
유료방송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건 바로 통신사다. 2020년 기준, KT 계열이 2조 4천억 원, SK브로드밴드가 1조 8천억 원, LG유플러스 계열이 1조 7천억 원으로 유료방송 시장의 90%를 통신사가 장악하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이정문 위원은 "홈쇼핑 송출 수수료의 과도한 인상 등으로 상품 제조, 유통, 판매사업자 등의 비용 인상을 초래하고, 결국 상품 가격 인상 등으로 최종 소비자인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통신사들이 유료방송을 장악한 상황에서 홈쇼핑사업자들에게 선택권은 없다. '뒷 번호'로 가고 싶다는 홈쇼핑사업자들의 하소연도 유료방송사업자들의 허락 없이는 '앞 번호'에서 방을 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안테나를 통해 TV를 시청하던 시대는 끝났다. 유료방송은 TV 시청의 보편권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채널 지배권을 활용한 계약의 불공정은 없는지, 송출 수수료 부담이 결국 시청자, 소비자에게 전가되지 않을지, 정부의 관리, 감독이 필요해 보인다.
정성진 기자(captai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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