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무역수지가 6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지속했다. 6개월 연속 무역 적자를 기록한 것은 외환위기가 촉발되기 직전인 1997년 5월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무역 적자가 지속되면 국내로 들어오는 달러보다 국내에서 해외로 나가는 달러가 더 많아져 가뜩이나 하락 중인 원화값이 추가로 더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환위기 직전에는 1995년 1월부터 1997년 5월까지 무려 53개월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국가신용등급 추락과 환율 급등(원화값 하락)의 단초를 제공한 바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9월 무역수지가 37억7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9월 들어 수출액 증가율은 한 자릿수로 주춤한 가운데 에너지 가격 고공 행진에 수입액은 증가세를 이어간 결과다. 9월 수출액은 574억6000만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월 대비 2.8%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수출 증가율은 2020년 10월 기록한 -3% 이후 4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내 주력 품목인 반도체 수출액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반면 9월 수입액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8.6% 늘어난 612억3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석유·액화천연가스(LNG)·석탄 3대 에너지값 상승세가 이어진 탓에 증가세를 이어갔다.
[송민근 기자]
올 무역적자 480억弗 사상최대 될듯…외환위기 직전의 2.3배
경상수지에도 연쇄 경고음
9월 누적적자 벌써 288억달러
금융위기때 규모 3배 될수도
한국경제硏 "통계 이래 최악"
9월 수출 2.8%늘며 실적 경신
수입물가 올라 수출효과 상쇄
경상수지 적자전환 뇌관 여전
14년만에 8월 적자 가능성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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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 원자재·에너지 물가 오름세와 달러당 원화값 하락에 무역수지가 6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가면서 한국 경제에 위기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올해 무역적자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두 배 이상 많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무역수지 관리가 시급하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제기된다.
2일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22년 무역수지 전망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원자재·에너지 등 가파른 수입물가 상승으로 올 하반기 무역수지는 374억달러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올해 상반기 무역적자가 이미 105억달러를 기록한 데 이어 하반기에 적자폭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는 무역통계가 작성된 1964년 이후 최대 연간 무역적자 규모다. 우리나라 연간 무역수지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에 206억달러,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에 132억달러의 적자를 각각 기록한 바 있다. 아울러 올해 무역액(수출액+수입액) 대비 무역적자 비율도 3.3%로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7.4%) 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에 무역적자 비율은 1.5%였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최근 무역수지 적자는 높은 수입물가가 촉발한 측면이 크기 때문에 해외 자원 개발 활성화 등 공급망 안정과 해외 유보 기업 자산의 국내 환류, 주요국과의 통화스왑 확대 등 환율 안정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무역수지가 좀처럼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우리 경제의 건전한 펀더멘털을 상징하는 경상수지 흑자마저 크게 갉아먹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9월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 대비 2.8% 증가한 574억6000만달러, 수입은 18.6% 늘어난 612억3000만달러로 집계됐다. 무역수지는 37억7000만달러 적자로, 지난 4월 이후 6개월 연속 적자 행진이다. 6개월 이상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약 25년 만이다.
이처럼 무역수지가 악화되는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고공 행진을 하면서 수입물가를 높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경연에 따르면, 수입물가 상승률이 1%포인트 높아지면 무역수지는 8억8000만달러 적자를 보는 것으로 기록됐다. 또 물량 측면에서는 흑자를 보였음에도 수입단가 상승폭이 수출단가 상승폭을 크게 웃돌아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수입증가율은 지난해 6월 이후 16개월 연속 수출 증가율을 웃돌고 있다.
그나마 작년 3월 이후 19개월 연속으로 해당 월의 역대 최대 수출액을 경신하고 있다는 점이 위안거리다. 올해 9월 수출액은 기존 최고 실적인 지난해 9월(559억달러)보다 15억달러 증가했다. 무역수지 적자 규모도 사상 최대인 지난 8월(94억7400만달러)과 비교하면 축소됐다. 1∼9월 누적 수출액과 수입액은 각각 5249억달러, 5538억달러로 역대 최대다.
경상수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무역수지가 악화되다 보니 경상수지도 같이 흔들리고 있다. 경상수지는 한 국가가 재화, 서비스, 자본, 노동 등의 거래를 통해 다른 국가에서 벌어들인 소득으로, 한국과 같이 기축통화국이 아닌 경우 경상수지가 적자이면 대외신인도가 떨어져 원화값 하락에 불이 붙을 수 있다. 달러당 원화값은 최근 급락세를 이어가며 지난달 30일 1430.2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연초보다 20% 내린 수준이다.
최근 한덕수 국무총리가 무역적자 지속으로 위기론이 불거지자 "경상수지가 흑자여서 크게 염려할 상황이 아니다"고 방어에 나선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당장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8년 이후 14년 만에 '8월 월간 경상수지 적자'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8월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94억7000만달러로, 월간 집계 기준으로 가장 큰 적자를 기록했다. 최근 해외여행 수요 증가로 여행수지 적자폭이 확대되면서 경상수지 적자 우려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행도 "8월 경상수지가 적자 전환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동안 경상수지는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배당 등 계절적 요인이 반영되는 4월을 제외하고는 월간 흑자를 꾸준히 기록해왔다. 4월을 제외하면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마지막 시점은 2012년 2월(25억달러 적자)이었으며, 8월을 기준으로 하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 8월(38억4500만달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26일 "아시아 양대 경제대국인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 가치의 급락으로 1997년처럼 아시아 금융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아시아 금융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다. 지속되는 달러화 강세에 일본과 중국의 통화가치마저 급락하면 아시아 지역에서 글로벌 자금 이탈을 촉발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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