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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영케어러 첫 실태조사 ‘총체적 부실’···윤석열 정부 출범 후 회의 ‘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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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돌봄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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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가족돌봄청년(영케어러) 규모와 현황을 파악하고자 진행한 실태조사가 부실하게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간병하다 아버지를 굶겨 죽음에 이르게 한 22세 청년 강도영씨(가명) 사건 등 영케어러의 간병 살인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며 정부가 처음으로 추진한 실태조사였다.

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복지부는 지난 4월1일부터 5월4일까지 전국 중·고등학생 및 만 13~34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복지부는 응답자 총 4만3832명 중 ‘가족을 돌보고 있다’고 답한 청년은 1802명(중·고등학생 860명·온라인 패널 942명), 지원·연계를 요청한 청년은 731명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지원·연계를 요청한 청년에 대해선 지난달부터 가사 간병 방문지원 사업, 긴급 복지 지원제도 등 지자체에서 지원 가능한 급여 및 서비스를 연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말까지 조사 동의자에 한해 생활 실태, 복지 욕구 등 심층조사를 진행하고 사회보장정보원·건강보험 데이터 등도 연계해 분석할 계획이라 밝혔다.

해당 실태조사는 당초 관계부처 합동으로 수립한 영케어러 현황 조사 계획에 비해 구멍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 작성된 관계부처 합동 ‘가족돌봄청년 지원 대책 수립 방안’ 문서를 보면 정부는 영케어러 실태 파악을 위해 청소년의 경우 중·고등학생과 학교밖 청소년으로 나눠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19~34세 청년도 대학생과 일하는 청년으로 분류했다.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설문 대상자를 세밀하게 나눈 것이다.

강 의원실이 해당 조사를 수행한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질의했더니, 학교밖 청소년은 실태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엠브레인퍼블릭 관계자는 강 의원실에 “조사가 중·고등학생과 성인으로 나뉘어 있는데, 중·고등학생 조사의 경우 전수조사를 목표로 교육청 협조를 받아 학생들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19~34세 성인 응답자에게는 급여 및 서비스 연계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대학, 청년센터 등을 통해 진행하기로 한 계획과 다르게 엠브레인퍼블릭이 보유하고 있는 온라인 패널 8731명만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엠브레인퍼블릭 관계자는 강 의원실에 “온라인 패널 조사의 경우 통계적 자료 수집만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제도 연계 인원을 파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영케어러 당사자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은 채 지원 연계 대상자에서 제외한 것이다.

국내에 영케어러 규모를 파악한 통계는 전무하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한국은 영케어러 인식 및 정책 대응을 다루는 국제 비교연구에서 7단계 ‘무반응 국가’로 분류된다. 영케어러가 얼마나 존재하는지도 영국·뉴질랜드·스웨덴 등 선진국 통계 범주로 추산할 뿐이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 2월 발간한 현안분석자료 ‘해외 영케어러 지원 제도와 시사점’을 보면, 국가별로 청소년 인구의 약 5~8%가 영케어러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 한국 11~18세 청소년 인구 368만4531명에 단순 대입하면 한국에 약 18만4000명~29만5000명의 영케어러가 있다는 추정치가 나온다고 입법조사처는 밝혔다.

복지부가 이번 조사로 파악한 청소년 영케어러 860명은 추정치의 0.29~0.46%에 불과하다. 정부가 통계로 확보하고자 하는 가족돌봄청년은 청소년뿐 아니라 만 19~34세 성인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부실 조사로 발생한 사각지대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가족돌봄청년 관계부처 TF’는 단 한 차례도 회의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3월7일 첫 회의, 4월5일 2차 회의를 끝으로 회의를 열지 않았다. 지난 5월 실태조사를 마쳤지만 4개월가량 지나도록 관계부처끼리 결과를 공유하지 않은 것이다.

TF는 영케어러 지원 대책 추진 내용 상황을 공유하고 부처 간 협조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국무조정실·복지부·교육부·여성가족부·고용노동부·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가 참여한다. 복지부는 지난 8월19일 윤 대통령에게 업무계획을 보고하며 “새로운 복지수요에도 적극 대응하여 자립준비(보호종료아동)·가족돌봄·고립은둔청년 등 그간 정책적 지원이 부족했던 청년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강 의원은 “영케어러를 집안 형편 어려운 효자로 취급하는 것보다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사회의 젊은 구성원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복지부는 제대로 된 영케어러 지원대책 마련을 위해 전수조사 실시, 관계부처 TF 정례회의 진행 등을 통해 하루빨리 이들이 사각지대에서 나올 수 있도록 적극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날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여성가족부를 통해 학교밖 청소년 지원센터에서 학교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에 대한 안내와 참여 독려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19~34세 성인의 경우 온라인 패널 조사 외에 “교육부, 고용노동부, 지자체를 통해 대학교, 청년센터, 고용복지플러스센터,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 설문 포스터를 게시하고 설문(급여·서비스 연계 의사여부 내용 포함)에 참여했다”고 했다. 복지부는 “실태조사가 정리되는 대로 가족돌봄청년 지원대책 마련 논의를 위한 관계부처 TF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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