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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먼 나라의 고통이 나와 무관치 않은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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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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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동간수류서윤수(東澗水流西潤水)/남산운기북산운(南山雲起北山雲)/전대화발후대견(前台花發後台見)/상계종성하계문(上界鐘聲下界聞)

동쪽의 계곡 물은 서쪽 시내로 흘러가고/ 남산에서 일어난 구름도 북산의 구름이 되네/ 앞쪽 누대에 핀 꽃을 뒤쪽 누대에서 볼 수 있고/ 윗 절에서 울리는 종소리 아랫마을에서 들을 수 있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772~846)가 지은 ‘기도광선사’(寄韜光禪·도광선사에게 보내다)라는 선시의 일부이다. 시인은 허난성 신정(新鄭)현 출신으로 호는 낙천(樂天)이며 향산(香山)거사 혹은 취음(醉吟)선생으로 불리었다. 장쑤성 항주(杭州)의 자사(刺史)로 부임했을 때 인근의 사찰과 암자에서 수행하던 작소도림(鵲巢道林·?~824)선사와 도광선사 등과 교유하면서 수행담(修行談)을 나누었다. 당신의 수행력 역시 선사들의 열전인 〈전등록〉의 권10에 등재될 만큼 만만찮았다. 만년에는 낙양 인근에서 시와 술을 벗 삼아 지냈다. 시문을 모은 〈백씨문집(白氏文集)〉 75권을 남겼다

도림선사는 멀쩡한 선방을 두고서 나무 위에서 정진하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작소(鵲巢·까지 집)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도림선사에 관한 기록은 비교적 많이 남아 있지만 도광선사는 〈전등록〉 권4 ‘도림선사’ 편에서 두 선사 간에 오고 간 날 선 문답 두어 마디 정도가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그 내용으로 미루어 본다면 같은 지역 사회에서 살았지만 둘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도광선사는 촉(蜀·쓰촨성) 출신으로 시를 잘 짓는다는 소문을 듣고서 백거이가 찾아가면서 벗이 되었다. 그와 주고받은 시문 몇 편과 주변 관계 기록을 통해 도광선사의 내면 세계를 헤아려 볼 수 있겠다. 3인이 등장하는 주요 무대는 항주 인근 영은산(靈隱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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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오래전에 서안(西安 옛 장안·산시성) 화청지(華淸池)를 찾았다. 본래 온천장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외지 사람까지 끌어모으기에는 역부족이다.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라는 스토리텔링이 더해진다. 그리고 거기에 백낙천의 ‘장한가(長恨歌)’라는 장문의 명시까지 입혀졌다. 장예모 감독이 제작한 밤중에 물 위에서 이루어지는 야외 공연은 덤이다. 이 4가지가 어우러지면서 제대로 된 관광지가 될 수 있었다.

연못 주변에는 보란 듯이 ‘장한가’ 전문을 널따랗게 새겨 두었다. 비익조(比翼鳥·짝을 짓지 않으면 혼자서 날 수 없는 새)와 대구를 이루면서 사이좋은 남녀를 의미하는 ‘연리지(連理枝·두 나무줄기가 맞닿아 합해지면서 한 그루처럼 보이는 나무)’를 노래한 부분이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이다.

하늘에서 만나면 비익조가 되기 원했고(在天願作比翼鳥)/땅에서 만난다면 연리지가 되기를 바랐지.(在地願爲連理枝)

시인의 대중적 인기는 중원(中原)에서 그치지 않았다. 신라에서도 인기 작가로 대접받았다. 신라의 상인이 저자의 글을 구하기 위해 적지 않는 대가를 지불했고 재상 지위에 있는 고위 관료도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서야 시 한 편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인기는 세대와 계급, 그리도 지역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 방법은 간단했다. 시를 지을 때마다 글 모르는 어르신을 모셔다가 작품을 먼저 읽어주었다. 노친네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면 즉시 평이한 표현으로 수정했다. 고개를 끄덕이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이렇게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항상 독자를 배려할 줄 아는 친절한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운문(雲門·864~949)선사는 이런 백낙천의 노력의 결과물인 짧은 시마저도 길다고 생각했는지 더욱 줄이고자 시도하였다. 도광선사에게 보낸 시 가운데 ‘동쪽에 있는 계곡 물은 서쪽 시내로 흘러가고 남산에서 일어난 구름도 북산의 구름이 되네’라는 원문 14글자를 여덟 글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두 줄을 한 줄로 합했다. 긴 것보다는 짧은 것이 당신의 성정, 그리고 선종의 가풍에 잘 맞았기 때문이다. 구름은 말할 것도 없고 계곡 물 이미지도 그대로 살리면서 글자 수까지 줄이는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남산기운 북산하우(南山起雲 北山下雨)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니 북산에 비가 내리도다.

어쨌거나 백낙천은 4줄의 시 속에서 ‘동서남북’과 ‘전후상하’라는 댓구의 틀을 정확하게 유지했다. 그리하여 팔방에서 각각의 것들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성 위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름다운 글로써 묘사했다. 계곡 물과 구름 그리고 꽃향기와 종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이것이 서로에게 공유되는 참으로 평화로운 풍광을 노래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결코 아름다운 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태평양 한복판에서 발생한 태풍이 동아시아 국가들을 휩쓸고 지나간다. 일주일 전부터 기상예보를 살피며 재난 대비를 해야 한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밀을 생산한다는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은 전세계를 식량 위기로 몰아넣었다. 소련의 가스 생산량 조절은 유럽 지역의 추운 겨울이 더 추워질 것이라고 여름부터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어쩌다 보니 설사 나쁜 관계가 되었을지라도 좋은 관계로 만들기 위한 노력마저 게을리한다면 결국 모두가 함께 힘들어진다는 것은 그동안 경험치가 증명해 준다. 관계성 회복이 시대의 화두로 등장했다.

원철 스님/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 꿈동산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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