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가상화폐 발행인과 백서가 부실한가
②사업 관련 허위사실을 공시했는가
③시세 조종 등 불공정 거래 유인 있는가
21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돼 있다. 서재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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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사기 범죄의 구체적 판단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 나왔다. 가상화폐 발행인의 실체가 불분명하고, 불공정 거래를 유인하는 정황이 인정되면 사기꾼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조병구)는 최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33)씨에게 징역 5년에 벌금 10억 원을 선고했다.
A씨는 2019년 "블록체인 기반 웹툰 플랫폼을 만들고, 자체 가상화폐를 발행해 플랫폼 내 화폐로 사용하겠다"며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가상화폐를 대형 거래소에 상장하면 최대 100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 A씨가 이렇게 모은 투자금은 30억 원에 달했다.
A씨는 결국 투자자들을 속여 수십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그는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정상적인 사업을 추진하다가 외부 사정 때문에 수익을 실현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가상화폐 발행인의 실체가 불명확하고, 초기 투자 결정의 주요 판단 근거인 '백서'가 부실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에게는 충분한 자금력이나 사업 수완이 없었다"며 "백서에 기재된 정보들은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내용을 짜깁기한 수준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A씨가 사업에 관해 허위사실을 공시했다고도 했다. 사업이 사실상 무산됐는데도 이를 알리지 않고 투자금 대부분을 돌려막기식으로 사용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A씨가 "시세조종을 할 수 있다"며 투자자들을 속인 정황에 대해서도 "합리적 예측 범위에서 실현 불가능한 거래로 투자를 유인할 경우 정상적 사업이 아닌 사기 범죄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단체 채팅방 등을 통한 군중의 투기 심리를 자극하는 속임수, 피해자들에게 보인 후안무치함 등에 비춰 보면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A씨는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동종 범죄 누범기간 중 범행 대부분을 저질렀다"고 질책했다. 다만 피해자들도 A씨의 투자 제안을 세밀히 살펴보지 않고 고수익만을 좇아 거액을 투입한 점을 참작해 형량을 정했다.
박준규 기자 ssangkk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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