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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현답] 경제 위기 때 '경제 관료'의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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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경제 관료'란 경제 부처에서 커온 주로 '늘공'들을 말한다. 고시 출신들이 많고, 정통 관료라는 권위적인 명칭이 붙어 다니는 것에 대해 오히려 자부심을 느낀다. 교만할 정도로 당당하다. '官은 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을 거침없이 한 에이스 금융통도 있었다. 요즘 같았으면 댓글 폭탄감이다. 대체로 싸움닭이지만, 남의 의견도 경청하여 치열한 토론 끝에 균형점을 찾아갔다. 기자들을 훈계하고 기업인들을 가르치려 들면서 이들과 친해진다. 가끔 규제의 창의적 설계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이 경제 위기 때는 애국적 투혼을 발휘했다. 한미 통화스왑이 안 되면 맨해튼 브리지에 투신하겠다는 자세로 임해 성공시킨 비장함, 부실 대기업을 도려내는 용기, 배 한 척 수출이라도 독려해서 무역수지 흑자를 만들어가는 정성, 발품을 팔아서 외국인 투자 한 건이라도 더 유치하려는 집요함, 대우, 기아에만 납품하다 빈사 상태가 된 중소 자동차 부품회사를 미국 완성체 기업과 연결시키는 발상…. 이런 것들이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기여한 경제 관료들의 헌신이었다. 이런 선배 경제 관료들의 기개, 경험과 기법은 후배들에게 전수되어 우리 경제의 버팀목으로 지금까지 이어졌다.

지금 한국은 분명 경제 위기 상황이다. 세계적 경제학자들은 이미 세계 경제가 경기 침체(Stagflation)에 진입해 있다고 진단하고 있고, 일부 극단적인 관측은 90년 만의 대공황을 우려하는 견해도 있다. 에너지, 자원과 식량 공급망의 애로와 고물가로 시작된 '공급 측면' 경제 불안은 이제 미국발 금리, 환율 문제로 불이 붙어 '수요 측면'까지 넘어와 복합 불황의 양상을 띠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쉽게 끝날 것 같지 않고, 앞으로 최소 1년간은 초긴장을 해야 될 것 같다.

현재 상황은 모든 부문이 동시다발적으로 악화되고, 각 경제 변수 간에 상충되는 면도 많아서 '원샷, 원킬'의 해결 방법은 없다. 꼬인 실타래를 가닥가닥 다시 풀어서 최적의 매듭을 만들어나가는 기술자의 정교함이 필요하다. 거시경제 정책뿐만 아니라 실물경제의 현장 애로 타개가 같이 작동해야 될 것이다. 경험 많고 현장을 잘 아는 경제 관료의 헌신이 필요한 이유이다. 환율 패닉과 금리 문제도 솜씨와 순발력 있게 대처해야 되지만, 수출, 중소기업, 에너지, 부동산 등 실물경제 분야를 꿰뚫는 경제 관료의 현장 감각도 매우 소중하다.

중국을 대체할 시장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고, 중소기업 경영 애로는 무엇을 도와주면 되는지, 반도체 인력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현장 관료들이 다수 있다. 올겨울 LNG 재고는 어느 정도이고, RE100을 위해 정부가 어떻게 제도 개선을 해야 하며,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는 어떤 협업을 해야 할지 줄줄 꿰는 에너지 전문 관료들도 있다. 침체된 부동산 경기의 실질적 원인이 무엇이고, 부동산 활성화를 위해 첫 단추를 어떻게 끼워야 할지를 아는 베테랑들도 있다.

그런데 이들이 소주성, 탈원전, 부동산 등 그간의 역주행 정책 집행에 동원되면서 지금 많이 주눅이 들어 있고, 그 후과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그들은 예민한 현안을 피하려 한다.

새 정부는 이들을 찾아내어 포용하고, 사기를 올려주고, 활용해야 한다.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 경제부총리와 산업부 장관이 이와 같은 경제 관료 출신들이고, 또 오랜 기간 외부에서 활약하다 돌아온 분들이다. 국회의장까지…. 이런 구성도 처음이다. 노장 '탑건 매버릭'이 빛난 이유는 그의 무용담보다는 후배들에게 '이기는 정신력'을 키워줬기 때문이다. 이들이 엘리트, 국·과장들과 경계선 없는 끝장 토론이라도 해서 해법을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천재와 괴짜들의 기발한 생각도 수렴하고 정치권과 소통하여 이들이 국가에 헌신하게끔 동기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위기에 새로운 레전드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조환익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전 한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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