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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사진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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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 박진영 사진전·국제사진제 등 잇따라

한겨레

일본 오키나와의 서단에 있는 미야코지마의 해변을 담은 박진영 작가의 근작.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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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 없는 짓이다.

하지만 계속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존재해온 이유니까.

사진을 찍는 작가는 이렇게 독백하면서 작업해왔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찍어 보여준다는 것의 무망함과 사진으로 남긴다는 것의 명징함. 두 감성 사이에서 계속 흔들리면서도 시선을 멈추지 않았다. 일본 도쿄에 거처를 두고 한국을 오가며 두 나라 자연과 인간의 풍경을 카메라 앵글에 집약해온 작가 박진영씨의 작업 이력은 고단한 실존적 물음으로 점철돼왔다. 일반인이 아닌 사진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이란 무엇인가? 이런 사진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그가 최근 다시금 이런 물음에 대한 응답 같은 작품들을 내놓았다. 멀리 일본 대마도의 산세가 보이는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 기슭 갤러리 카린의 지하 2·3층 공간. 여기서 그가 지난 16일부터 팬데믹 기간 촬영한 근작과 신작들을 부려놓았다. ‘엄마의 방’이란 제목을 붙인 이번 사진전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지하 3층 공간의 대작들. 거친 노출 콘크리트 벽면에 수직 비상계단이 놓인 극히 인공적인 공간에 세계적인 대자연의 보고인 일본 규슈 남단 야쿠시마의 거목과 바위, 계곡물을 담은 아홉개의 패널 사진들이 내걸렸다. 작가가 즐겨찾는다는 도쿄 남동쪽 이즈반도의 해변 기암과 절벽의 풍경들도 그 옆에 나란히 놓여 마치 그 자연 속을 거니는 듯한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 사진 프레임 바깥의 각박한 공간과 강렬하게 대비되는 이 구성의 묘미를 맛보고 위층으로 올라가면 그가 오키나와 최서단의 미야코지마 화산섬 검은 해변의 울룩불룩한 요철 무늬와 태양의 역광을 받으며 촬영한 거제섬 바다와 하늘의 눈부신 어울림이 눈을 간지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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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 갤러리 카린의 지하공간에 내걸린 박진영 작가의 풍경사진. 일본 규슈 남쪽 야쿠시마의 대자연을 담은 것이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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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작가의 풍경들은 편안한 힐링을 준다기보다는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말한 숭고미와 인간의 감성이 빚어낸 간단치 않은 이미지의 화합물처럼 비친다. 지하 3층의 야쿠시마나 이즈반도의 기암은 말할 것도 없고 홋카이도 북동쪽의 일본 최북단 레분섬, 미야코지마의 알려지지 않은 화산섬 해변, 멕시코 몬테레이의 산야를 찍은 사진들이 이를 증거한다. 전시 설명을 보면 이 사진들은 수년 전부터 치매 증세를 보인 모친이 치매 이전 가고 싶다고 했던 국외 절경들을 떠올리면서 대신 그 풍경을 찍어 전하겠다는 일념으로 촬영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작가의 사모곡에 풍경 이면의 것을 보여주겠다는 사진가의 일념이 얽혀들어 보는 이에게 미묘한 감성을 빚어내는 풍경 사진의 수작이 태어난 셈이다. 10월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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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부산국제사진제 포스터. 땅의 기운을 회복시키려는 퍼포먼스를 위에서 부감한 박형렬 사진작가의 작품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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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작가 전시 외에도 부산에는 지금 애호가들에게 손짓하는 사진 마당이 여럿 차려져 있다. ‘살과 돌’을 주제로 지난 17일 개막해 10월16일까지 열리는 2022 부산국제사진제는 사진평론가 김소희씨가 총감독을 맡아 팬데믹이 잦아드는 시기 도시와 인간의 삶 사이의 관계 등을 보여주는 4개 나라 작가 10명의 작품들을 내걸었다. 한국 사진사의 거장 임응식이 찍은 1940~50년대 이 땅 사람들의 일상과 그들을 둘러싼 건축적 이미지들, 리처드 투시맨이 연출한 연극무대 같은 집 속 인물 군상, 손은영 작가가 포착한 이 땅 곳곳 서민촌 가옥들의 아릿한 회화적 풍경들이 손짓한다.

사진계의 논객으로 꼽히는 평론가 진동선씨는 마그리트 그림의 검은 옷 신사를 연상시키는 복식을 하고 자신이 성장했던 남도 곳곳에서 자기 뒷모습을 찍은 사진 신작들을 부산 송정동 갤러리 플루 개관전에 내놓았다. “사진가로서의 작품이 아니라 비평 글 대신 사진 자체를 통해 사진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행위”라고 진 평론가는 주장한다. 10월8일까지.

부산/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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