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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어딜 가든 ‘최초’...난 음악으로만 승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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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 축제 100년 역사상 첫 여성 오페라 지휘자 요아나 말비츠

조선일보

© SF/Marco Borrelli 지난 8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요아나 말비츠. '모차르트 마티네' 시리즈 중 하나다. 말비츠는 올 축제에서 신작 오페라 '마술피리'를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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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신 요아나 말비츠(Joana Mallwitz·36)는 지금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지휘자다. 2020년 잘츠부르크 축제에서 모차르트 오페라 ‘코지 판 투테’를 이끌면서 이 축제 100년 만에 첫 여성 오페라 지휘자로 기록됐다. 내년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로 부임한다. 쿠르트 잔데를링,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같은 거장(巨匠)의 조련을 거친 유럽 정상급 교향악단이다. 여성 오케스트라 지휘자 역사상 최고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지난달 잘츠부르크 축제가 열리는 모차르트 하우스 극장 앞 카페에서 말비츠를 만났다. ‘마술피리’ 새 프로덕션을 맡아 빈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그녀가 궁금했다. 말비츠는 검은 바지에 흰 운동화 차림이었다.

–잘츠부르크 축제 100년 역사상 첫 여성 지휘자라니, 변화가 너무 느린 것 아닌가.

“놀라운 일이다. 내가 지휘하러 가는 곳마다 처음인 경우가 많다.”

잘츠부르크 축제에서 대타(代打)로 나선 여성 오페라 지휘자는 있지만 처음부터 정식으로 전 공연을 모두 지휘한 것은 말비츠가 처음이다.

–이번 ‘마술피리’는 연출, 의상, 무대 등 주요 스태프도 모두 여성이다.

“글쎄, 이건 젠더(성별)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연출가 리디아(Lydia Steier·44)는 2011년 하이델베르크 극장에서 ‘아이다’를 함께 올렸을 때부터 잘 알고 지낸다. 그녀를 인간적으로도 좋아한다.”

–이번 ‘마술피리’는 앞선 작품과 어떻게 다른가.

“리디아와 모차르트 고향에서 ‘마술피리’를 빈필과 공연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난 스무 살 때 작은 극장에서 ‘마술피리’를 처음 지휘했다. 이 오페라를 그간 어떻게 연주해왔는지 안다. 모든 걸 잊고, 악보로 돌아갔다. 모차르트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알려고 애썼다. 잘츠부르크 축제는 모차르트의 정신을 구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말비츠는 스무 살이던 2006년 하이델베르크 시립극장 음악 코치로 시작, 카펠마이스터(지휘자)로 일했다. 그는 “극장의 허드렛일을 닥치는 대로 하면서 배웠다”고 했다. 스물여덟이던 2014년 에르푸르트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이 됐다. 독일 극장에서 최연소 음악감독이었다. 2018년 뉘른베르크 극장 음악감독으로 부임했다.

–빈 필을 지휘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은가.

“재작년과 작년 ‘코지 판 투테’를, 올해 ‘마술피리’까지 3년 연속 함께했다. 빈 필 지휘가 스트레스냐고? 오히려 즐겁다. 오케스트라는 자신들만의 DNA가 있다. ‘코지 판 투테’를 지휘하면서 단원들이 매우 열려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훌륭한 음악을 만든다는 목표는 같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의 첫 여성 수석 지휘자로 부임한다.

“어딜 가든, 뭘 하든 최초라고 하니까 늘 놀랍다. 시모네 영(61·전 함부르크 오페라극장 음악감독)과 마린 올솝(66·빈 방송교향악단 수석 지휘자)이 등장한 게 한참 전인데…. 난 낙천적이다. 내 지휘가 단원들의 신뢰를 받느냐 아니냐가 중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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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나 말비츠는 “빈 필을 지휘하는 게 즐겁다. 훌륭한 음악을 만든다는 목표는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 Nikolaj L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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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rsten Schmidt-Hern 말비츠 남편 시몬 보데(테너)는 아내가 지휘하는 '마술피리'에 출연했다. 실내악 성지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빗 반주로 리사이틀을 열 만큼 잘나가는 성악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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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에 출산한 말비츠는 10개월 된 아들이 있다. “남편도 연주 여행할 때가 많아 주위 도움을 많이 받는다. 지난달에 친정 부모님이 2주간 잘츠부르크에 와서 아이를 돌봐주셨고, 지금은 ‘할머니’가 봐주신다.”

또렷한 한국어 발음이었다. “남편이 한국계인데, 시어머니가 파독(派獨) 간호사다.” 말비츠 남편은 테너 시몬 보데(Bode·38)다. 파독 간호사 출신 안혜자(68)씨 아들이다. 프랑크푸르트와 하노버 극장 전속 가수 출신인 보데는 지난 6월 실내악 성지인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빗과 리사이틀을 가질 만큼 인정받는 성악가다.

말비츠는 “남편이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할 텐데…” 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기를 안은 건장한 사내가 다가왔다. 중년 여성과 함께였다. 안혜자씨였다. “스무 살 때인 1974년 파독 간호사 마지막 팀으로 독일에 왔다. 48년 전이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말 한마디에 스쳐갔다. “우리 아들도 며느리가 지휘하는 ‘마술피리’에 출연하는데….” 아들이 만류했다. 안씨는 “그래도 네 소리가 제일 우렁차게 들린다”고 했다. 보데는 ‘사제(司祭) 2′로 나온다.

인터뷰 다음 날 ‘마술피리’를 봤다. 말비츠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모차르트를 연주했을, 빈 필 단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지휘대의 말비츠는 2시간 50분 공연 내내 미소를 띤 채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아삭아삭함과 원숙미가 잘 어우러진 음악’(an ideal mixture of crispness and roundedness)이라고 호평했다. 말비츠와 빈 필의 만남은 음악계의 새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 같았다.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김기철 기자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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