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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김민철의 꽃이야기] 고들빼기·과꽃, 원주 박경리 옛집에 피니 특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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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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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원주 박경리문학공원에 들렀더니 아직 고들빼기 꽃이 남아 있었다. 박경리 작가와 30여년 인연을 맺은 서울대 김형국 명예교수는 최근 평전 성격의 책 ‘박경리 이야기’를 냈다. 이 책에 작가와 고들빼기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작가는 1980년 원주 단구동으로 이사해 이곳에서 텃밭을 가꾸며 ‘토지’ 4~5부를 집필했다. 김 교수가 80년대 초 작가를 처음 찾아갔을 때 작가는 직접 차린 점심을 내놓았다. 밥상에 오른 푸성귀 중에는 고들빼기도 있었던 모양이다.

<대청너머 정원은 절반 이상이 ‘철저히 혼자이기를 고수하는’ 작가의 땀을 기다리는 텃밭이었다. 거기서 파, 부추, 고추, 배추, 고들빼기가 철 따라 자란다. “고들빼기, 경상도 말로 씬냉이 한 뿌리면 한 끼 반찬으로 족하다. 그 뿌리에 지력이 얼마인데...”> (‘박경리 이야기’ 64쪽)

이후 김 교수가 종종 안부전화를 할 때 작가는 어김없이 끝머리에 “가까이 원주를 한번 다녀가라”, “마당엔 고들빼기가 지천으로 자란다”는 말을 했다.

박경리 작가는 고들빼기를 특별히 여긴 모양이다. 작가의 고향인 통영의 미륵산 기슭에 작가의 묘소가 있고, 그 입구에 박경리기념관이 있다. 지난여름 이 기념관에 갔을 때 정원에서 작가의 시비를 보았다. 시비에 새겨 넣은 시 ‘삶’에 뜻밖에도 고들빼기가 들어 있었다. ‘대개/소쩍새는 밤에 울고/뻐꾸기는 낮에 우는 것 같다/풀뽑는 언덕에/노오란 고들빼기꽃’, ‘미친 듯 꿀찾는 벌아/간지럽다는 고들빼기꽃/모두 한목숨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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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박경리문학공원에 핀 고들빼기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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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들빼기는 봄에 피는 꽃이라 박경리문학공원 작가의 옛집 담 위에 핀 고들빼기도 시들어가고 있었다. 고들빼기는 씀바귀 비슷하게 생긴, 어디에나 흔한 들꽃이다. 씀바귀처럼 김치를 담가먹기도 하고 쌈으로도 먹는다. 씀바귀와 자라는 시기와 장소는 물론 생김새도 비슷한데, 고들빼기는 잎이 둥글게 줄기를 감싸고 있는 점이 씀바귀와 다르다. 또 고들빼기 꽃은 꽃술과 꽃잎 모두 노란색이지만, 씀바귀는 꽃잎은 노란색, 꽃술은 검은색인 점도 달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박경리문학공원에서 고들빼기 다음으로 눈길을 끈 것은 지금 한창인 과꽃이었다. 박경리 옛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기에 딱 좋은 텃밭 옆 언덕에 피어 있었다. 과꽃은 소설 ‘토지’에서 양현이가 어머니 봉순이를 그리워하며 섬진강에 던진 꽃이다. 소설엔 최참판댁 ‘대문간에 이르기까지 길 양편에는 보랏빛 흰빛, 그리고 분홍빛의 과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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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문학공원에 핀 과꽃. 작가는 뒤로 보이는 집에서 '토지' 4~5부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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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이는 봉순이(기화)가 기생 생활을 할 때 이상현과 사이에서 난 딸이다. 봉순이가 이후 아편중독에 빠져 섬진강에 몸을 던진 후 서희는 양현이를 친딸처럼 키운다. 양현이는 어느날 과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섬진강에 던지며 죽은 엄마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 우연히 송관수의 아들 영광이가 이 장면을 본 것을 계기로 영광과 양현이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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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옛집. 이 집과 함께 주변을 박경리문학공원으로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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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진분홍색 혀꽃에 노란 중앙부를 가진 과꽃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참 예쁘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정감이 가는 꽃이다. 국화과 식물로, 원줄기에서 가지가 갈라져 그 끝마다 한 송이씩 꽃이 핀다. 꽃색도 보라색에서 분홍색, 빨간색, 흰색까지 다양하다. 잎은 타원형이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줄기 높이는 30~100cm정도이고 자주빛이 돌고 많은 가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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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색으로 핀 과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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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고향에서는 과꽃을 대개 화단이나 장독대 옆에 심었다. 많은 사람들이 과꽃을 보면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가 나오는 동요 ‘과꽃’이 떠오를 것이다. 필자도 그렇지만, ‘토지’를 읽은 다음부터는 기생 몸에서 태어나 영광이와 이루지 못한 사랑을 하는 양현이도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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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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