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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쌀 남아도는데…'농퓰리즘'에 정부 또 두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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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 매입 논란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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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쌀 시장 안정을 위해 연내 작년과 올해산 쌀 45만t에 대한 시장격리에 나선다고 25일 밝혔다. 이는 2005년 공공비축제를 도입한 이후 최대 규모다. 이를 위해 투입되는 예산만 1조원 안팎에 이를 전망이다. 앞서 실시한 작년산 쌀 시장격리와 현재 진행 중인 공공비축까지 더하면 정부는 올해 쌀 매입에만 예산 2조9000억원을 투입하는 셈이다.

이날 농림축산식품부는 제4차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연내 쌀 45만t을 시장에서 격리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김인중 농식품부 차관은 "과도하게 하락하는 쌀값을 상승세로 전환하려면 초과 생산 물량을 수확기(10~12월)에 시장에서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10월 초중순에 발표하던 쌀 수확기 수급안정대책을 관계부처·여당 등과 협의해 2011년 이후 가장 이른 시기에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산지 쌀값은 지난 15일 기준 작년보다 24.9% 하락한 20㎏당 4만725원이다. 김 차관은 이어 "올해 약 25만t이 초과 생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작년산 쌀은 예년에 비해 많은 물량이 11월 이후에도 시장에 남아 쌀 가격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결정된 격리 절차에 대해서는 "작년산 쌀을 대상으로 수요 조사를 벌인 뒤 세부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며 "다음달 20일 전후로 매입이 시작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시장격리는 쌀값 안정을 위해 정부가 시장에 풀린 쌀을 매입한 뒤 일정 기간 격리하는 조치다. 이날 발표한 시장격리 조치는 2005년 공공비축제를 도입한 이후 10번째로 이뤄지는 것이다. 여기에 현재 진행 중인 공공비축 물량 45만t까지 더하면 올해는 수확기에만 쌀 총 90만t이 시장에서 격리된다. 이는 올해 예상한 쌀 생산량의 23.3%를 차지하며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정부가 이처럼 쌀을 대규모로 사들이는 것은 농민들의 시장격리 요구가 날로 거세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남는 쌀 의무매입법'으로 불리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야당을 설득하기 위한 목적도 포함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시장격리 규모를 늘리는 대신 양곡관리법 개정안 강행을 늦춰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쌀 소비량이 갈수록 급감하는 점을 감안하면 쌀 매입에 한정된 예산을 지나치게 투입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공공비축제를 실시한 이후 공공비축과 시장격리에 투입한 예산은 연평균 1조원이 넘는다. 올해만 보면 지난 2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총 7883억원을 투입해 작년산 쌀을 격리했다. 공공비축도 작년보다 10만t 늘려 사들이고 있다. 이 2개 조치에 들어가는 예산만 1조8817억원이고 이날 결정으로 1조원이 더 들게 됐다.

쌀 생산량은 2005년 476만8000t에서 2010년 429만5000t, 2015년 432만7000t, 2021년 388만2000t으로 17년 새 18.5% 감소했다. 1인당 쌀 소비량은 2005년 80.7㎏에서 2021년 56.9㎏으로 29.4% 줄며 더 가파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식습관 변화와 1인 가구 증가 등의 영향이다.

이 같은 쌀 과잉 생산 구조는 식량안보 측면에서도 부담이다. 쌀 자급률은 수입산까지 더하면 100%를 넘는다. 반면 쌀을 대체하는 밀·옥수수·콩의 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2019년 기준 자급률(사료용 포함)은 밀 0.5%, 옥수수 0.7%, 콩은 6.6%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밀·옥수수·콩에 수급난이 생기면 충격을 그대로 떠안게 된다.

쌀 매입에 대규모 예산이 쓰이면 미래 농업 발전을 위한 투자를 늘리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시장격리 예산은 소모성 성격이 강하다. 그만큼 기회비용이 날아가는 것이다. 올해 농식품부 예산 중 쌀 매입계획을 담은 '식량 작물 수급 안정' 항목 예산은 작년보다 6.3% 늘어난 6조7556억원이다. 반면 '스마트 농업 확산'과 '신산업 육성 및 수출 활성화' 예산은 작년 대비 2% 증가한 1조2134억원에 그친다.

심지어 최근 국회에서는 야당 주도로 매년 쌀을 격리하도록 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농업전문가는 "공공비축과 시장격리에 매년 상당한 세금이 투입되고 있다"며 "수급 비상시 불가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의무적으로 하는 건 시장격리의 목적과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이렇게 되면 '농업직불금 5조원 확대'라는 새 정부 공약 이행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현재 농업직불금 규모는 2조4000억원으로 2배 이상 확대해야 한다. 나아가 전국 농민을 대상으로 하는 농업직불금과 달리 시장격리는 쌀에 한정돼 있어 형평성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쌀 매입에 들어가는 과도한 예산을 줄이는 동시에 쌀 소비 활성화 방안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황성혁 농협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19일 열린 '쌀 소비 확대와 식습관 개선'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쌀 중심의 식습관 복원과 쌀에 대한 홍보를 늘려야 한다"며 "연령별·가구별 특성에 맞춘 다양한 쌀빵·쌀죽·쌀면 등 가공품 개발을 통해 소비를 확대할 수 있다"고 전했다.

[송광섭 기자 / 송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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