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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우의 바람] 후지와라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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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천리안위성 2A호가 지난 5일 오전 7시 20분 촬영한 제11호 태풍 힌남노. 국가기상위성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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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우 |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유체에서 소용돌이가 2개 이상 발생하고 이들이 충분히 가깝다면 서로 간섭할 수 있다. 무려 100년 전 발표된 이론이다. 이를 발표한 일본 기상학자의 이름을 따라 ‘후지와라 효과’라 부른다. 원래는 물탱크 실험을 통해 제안된 이론이다. 그러나 태풍(태풍은 대기에서 발생하는 강한 소용돌이다)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태풍 연구와 예보에 전격적으로 도입되었다.

추석을 앞둔 9월 초, 후지와라 효과가 다수의 미디어에 등장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와 제12호 태풍 ‘무이파’가 동시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힌남노는 반시계 방향 원을 그리면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태풍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열대 요란 무이파는 북쪽으로 이동 중이었다. 만약 둘 사이가 충분히 가까워진다면, 태풍 힌남노가 열대 요란 무이파를 흡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후지와라 효과의 한 형태다. 물론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무이파는 지속적으로 성장해 9월8일 태풍으로 명명되었다. 8월28일부터 태풍이었던 힌남노에 비해 10일이나 늦었지만, 결국 제12호 태풍으로 발달했다.

서쪽으로 이동하던 힌남노는 대만 남쪽에서 급격히 진로를 바꾸어 한반도로 북진 그리고 북서진했다. 9월6일 부산 앞바다를 통과할 것이라는 예보가 발표되면서 남동 해안 지방은 극도의 긴장 상태를 맞았다. 추석을 앞두고 맞닥뜨린 태풍. 많은 대비를 했지만, 충분한 대비는 있을 수 없다. 특히 힌남노가 역대 최강 태풍이라는 사실에 전 국민의 관심이 힌남노에 쏠렸다. 초당 72미터에 이르는 풍속. 미국합동태풍경보센터가 정의한 슈퍼태풍 기준(초당 67미터 이상 풍속)을 거뜬히 넘어선 강력한 태풍이었다. 안타깝게도 힌남노는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포항이었다. 아파트 주차장이 침수돼 인명 피해가 났고 막대한 재산 피해도 입었다. 추산 피해액은 1조원을 훌쩍 넘었다.

당시 다수 언론에서 언급한 후지와라 효과. 내심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기상학계의 전문용어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 표현. 그런데 정작 일본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용어. 학계에서도 ‘태풍 간 상호작용’이라는 더 포괄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그 누구도 후지와라 효과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후지와라. 일제 시대 이론물리학자였다.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노르웨이로 건너가 당대 최고 기상학자에게 배웠다. 이를 계기로 기상학에 입문했다. 귀국 뒤 도쿄대 교수를 거쳐 1941년 일본 기상대장(현재의 기상청장)으로 활동했다. 여기까지는 성공적인 커리어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만다. 일본의 패망이 짙어질 즈음, 군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풍선폭탄 개발에 참여한 것이다. 제트기류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분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풍선에 시한폭탄을 달아서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프로젝트였다. 제트기류의 특성을 알아야 폭탄이 터지는 시간을 맞출 수 있었기 때문에 기상학자의 참여는 필수적이었다. 바로 후지와라가 그 역할을 한 것이다. 상상의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풍선폭탄은 1944년부터 1945년까지 지속해서 띄워졌고 일부는 실제 미국 본토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후지와라는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모든 공직에서 퇴출당한다. 물론 개인적인 연구를 계속했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다. 심지어 일본 기상청에서도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후지와라의 이론을 사용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 일본의 식민 통치를 경험한 나라에서 일본 전범을 기억하며 태풍을 설명한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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