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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브렉시트' 영국의 EU 탈퇴

브렉시트 이어 총리 교체, 여왕 서거까지…영국, 3대 변수 고비 넘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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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영국 런던 버킹엄 궁에 8일(현지시각)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를 알리는 조기가 내걸려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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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이어 보리스 존슨 총리의 낙마로 인한 새 총리 임명, 70년을 재위한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까지. 한꺼번에 큰 변화에 마주한 영국이 이 고비를 얼마나 잘 넘길 것이냐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다양한 정치·경제적 어려움을 겪어 왔다. 우선 EU 단일 시장에서 빠져나오면서 대규모 역내 시장을 잃게 되는 타격을 받았다. 영국 싱크탱크 CER은 지난 한 해 신종 코로나와 글로벌 공급망 위기 등을 배제한 순수 브렉시트로 인한 지난해 영국 교역량 감소를 15.8%로 추산했다. 장기적으로 영국 전체의 수출입이 약 15% 줄고, 국내총생산은 장기적으로 4% 감소하리라는 전망도 나왔다. EU 국가들과 관계에서 간소했던 여러 절차가 복잡해지면서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각종 비용이 증가했다.

EU 잔류를 원하는 사람이 많았던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와 브렉시트 쪽에 투표한 사람이 많았던 잉글랜드와 웨일스 간의 정치적 갈등도 커졌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분리 독립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으며, 북아일랜드는 사실상 EU 단일 시장에 남는 조치(북아일랜드 협약)가 취해졌으나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며 영국과 EU 간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지난 2년여간 이런 문제에 제대로 대응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거짓말 논란으로 초래된 정치적 위기에 발목이 잡혀 리즈 트러스 총리에게 바톤을 넘겼다. 트러스 총리는 보수당 정권 내에서 환경, 교육, 법무, 재무, 통상, 외무 등 여러 정부 부처의 장관과 부장관 등을 거치며 경험을 쌓았으나, 총리로서 리더십과 조정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여기에 10%대의 상승률을 보이는 고물가와 에너지 공급 위기로 인해 영국 경제는 침체의 문에 접어들고 있다. 영국 가계 경제 사정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어려운 상황이다. 파운드화 가치는 37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소득과 일자리를 위협받는 국민의 불안과 불만은 날로 커지고 있다.

트러스 총리는 감세와 개혁을 통해 경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나, 한편으로 눈앞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정부 재정을 대거 동원해 에너지 가격을 동결하고 국민에게 현금성 생계 지원을 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일각에서는 트러스 총리의 이러한 정책이 심각한 물가 상승세를 더 자극할 수 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나라의 중심을 잡고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큰 어른’의 존재가 더 절실하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 지난 70년간 영국 국민의 추앙을 받아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은 찰스 3세가 어머니가 했던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나온다. 찰스 3세는 왕세자 시절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는 현재 아내인 카밀라 파커 보울스와의 불륜으로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를 낳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이혼했고, 이후 다이애나가 파파라치에 쫓기다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적 최후까지 맞으면서 큰 비난을 받았다.

이 때문에 그가 이끄는 왕실이 어려운 시기에 국민을 다독이고 뭉치게 하여 위기를 돌파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나온다. 오히려 왕실에 대한 반감을 키워 2차 대전 이후 줄곧 국력이 쇠락하는 가운데도 굳건히 지켜져 왔던 입헌 군주제와 영연방 체제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실제로 군주제 폐지 운동 단체 리퍼블릭은 “여왕이 승하하고 나면 영국 왕실은 껍데기만 남을 것”이라며 “찰스 왕세자가 최선이 아니며, 우리가 국가원수를 선택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영국 여론조사 업체 유고브가 지난해 5월 영국인 4870명을 대상으로 입헌군주제에 대한 선호도를 물은 조사에서 18~24세 젊은 응답자 중 31%와 25~49세 응답자의 53%만이 “왕이나 여왕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다른 영연방 국가에서도 회의론이 일고 있다. 지난해 11월 카리브해의 섬나라 바베이도스가 영연방에서 탈퇴, 공화국으로 전환한 것이 대표적이다. 캐나다에서 지난 4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5%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사후 찰스 왕세자를 캐나다의 국가 원수인 영국 왕으로 인정하는 데 반대한다”고, 76%는 “그의 부인 커밀라를 왕비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입헌 군주제를 폐지하고 영국 왕실과 단절하는 데 찬성한다는 의견도 51%나 됐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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