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6 (목)

[단독] 직원 개인카드로 2억 긁었다…'꼼수' 판친 해외 공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외교부가 올해 일부 재외공관을 대상으로 정기 감사를 벌인 결과 '물밑 외교'를 위한 예산을 부당하게 쓰거나, 출장 경비를 과다 청구하고, 외교용 선물이 사라진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으로 드러났다. 논란이 됐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사례와 유사하게 공관 행정직원의 개인 카드를 이용해 수년간 식자재, 선물, 항공권 등을 사들인 정황도 발견됐다.

중앙일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정부서울청사 별관).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직원 개인카드로 2억 결제



8일 중앙일보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2022년 재외공관 정기감사 결과에 따르면 A대사관은 주재국에서 대사관 명의의 신용카드가 발급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행정직원 직불카드로 2017년 3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총 569건 13만 3341달러, 한화 약 1억 8000만원을 썼다. 사후에 소명한 용처는 항공권 발급, 식자재, 선물, 집기 구입 등이었다.

대사관 측은 "결제 후 해당 직원의 계좌에 쓴 만큼의 비용을 입금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인카드 결제 후 현금을 송금하는 방식으로는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경기도청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도 비서실 직원의 개인 카드로 식비 등을 결제한 뒤 추후 경기도 법인카드로 바꿔치기 결제를 하는 수법을 썼는데 이로써 예산의 사적 사용을 은폐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외교부는 주재국 사정으로 대사관 명의 카드를 발급받지 못할 경우 개인의 신용카드를 행정지원시스템에 등록하고 업무상 용도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A대사관은 이 과정조차 거치지 않았다.

중앙일보

2022년 외교부의 재외공관 정기감사 결과. A대사관은 행정 직원의 개인 카드로 대사관 운영비 명목의 결제를 한 뒤 추후 현금을 송금해 보전했다. 감사관실은 규정 위반으로 간주하고 관련 조치를 주문했다. 자료 외교부. 태영호 의원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사 부임 전 점심값을 청구?



B대사관에선 지난해 신임 대사가 발령을 받고 현지에 부임하기도 전에 한국에서 쓴 비용을 공관 예산인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로 집행했다. 대사관에 오기 전 한국에 머무르면서 점심 식사 등을 한 비용 약 64만원을 공관 예산으로 쓴 것이다.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는 외교관들이 해외에서 주요 인사와 물밑 접촉을 하고 인맥을 쌓기 위해 배정된 예산이다.

이번 감사에선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를 쓰고도 집행 내역과 결과를 남기지 않은 사례(한화 약 6599만원), 제때 회계 처리를 하지 않은 사례(한화 약 1061만원) 등이 다수 적발됐다. 규정에 따르면 공관장(대사, 총영사) 외 공관원이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의 최소 30%는 쓸 수 있어야 하는데, 공관장이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의 약 90%를 독점하고 쓴 경우도 있었다.

외교부 감사관실은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는 외교 정보 수집 등 외교 목적성과 대외 보안성이 있는 업무에 사용하도록 돼 있는데 교민 접촉, 홍보 배너 제작, 케이터링 등 부적절하게 쓴 사례도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출장 기간을 허위로 보고해 돈을 타가는 경우도 있었다. 2019년 12월 C공관에서는 현지에서 열린 무상원조사업 행사 참석을 위해 공관원 세 명이 당일 출장을 간 뒤 보고서엔 1박 2일 출장이라고 쓰고 일비와 식비 약 77만원을 타갔다.

중앙일보

사진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홈페이지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구입했다는 선물은 '실종'



주류, 기념품 등 외교용 선물 구입 내역은 관련 기록이 부실하거나 실제 재고와 수량이 맞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

D공관에선 자개보석함, 머그잔, 부채세트 등을 샀다고 행정지원시스템에 올렸지만 선물을 준 것도 아닌데 정작 재고는 하나도 없었다. 해외 공관에선 선물용으로 주류를 사는 경우도 많은데 이 경우에도 공관이 구입했다고 보고한 와인 병수와 실제 보유한 병수에 차이가 났다. 시스템상으로는 52병을 샀다고 돼 있는데 실제론 39병밖에 없어 13병이 비는 식이다.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 연말에 고가의 선물을 과다하게 구입한 정황도 있었다. E공관에서는 2019년 12월 금관, 거북선 등 선물 약 254만원어치를 산 뒤 3년째 활용하지 않아 감사관실로부터 "예산 낭비가 없도록 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태영호 의원은 "본부에서 멀리 떨어진 해외 공관일수록 예산 집행 원칙을 지키는 데 있어 해이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간 반복되어온 외교부의 비상식적인 관행은 지탄받아 마땅하다"며 "국민 혈세가 부당하게 낭비되지 않도록 재외공관 살림살이를 보다 철저히 관리해 윤석열 정부 외교부가 더 나은 모습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22년 외교부의 재외공관 정기감사 결과. 행정지원시스템상 주류보유현황과 실보유분 간 차이가 난다. 자료 외교부. 태영호 의원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