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식 차수판이 설치된 사진. 사진 서초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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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완공된 서울 서초구 디에이치반포라클라스 아파트는 지난달 8일 기습폭우를 무사히 넘겼다.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빼내려다 밀려든 빗물을 피하지 못한 40대 남성이 숨진 건물이나 차량 침수 피해가 발생한 반포 자이와 직선거리로 1㎞도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있는 아파트다. 이 아파트 관리실 관계자는 “지대가 높지 않지만, 차량 침수 피해가 한 건도 없었다”며 “차수판이 물길을 막아 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 지하주차장 출입구 양쪽에는 수동식 차수판(건축물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판)을 끼워 넣을 수 있는 틀이 부착돼 있다. 폭우가 쏟아지면 높이 50㎝ 이상 되는 스테인리스 차수판을 간단히 설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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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때 천당과 지옥 가르는 차수판
침수된 지하주차장 수색 태풍 힌남노로 침수된 주차장에서 사상자가 발생한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의 한 아파트에서 7일 오후 해병대 특수수색대와 소방수색대가 침수주차장으로 투입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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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전국을 할퀸 수마(水魔)의 피해는 주로 지하에 집중됐다. 지난달 8일엔 서울 관악구의 반지하 주택과 서초구의 한 빌딩 지하주차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했고 한 달도 안 돼 덮친 태풍 ‘힌남노’는 경북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비극을 낳았다. 7명의 목숨을 앗아간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물이 가득 차는 데 걸린 시간은 단 8분이었다. 같은 날 포항 다른 아파트에서 지하주차장에 있던 차량을 보러 나갔던 50대 주민 김모씨는 “물이 어느 순간 무릎 넘어까지 차올랐다. 뉴스를 보니 ‘나도 죽을 뻔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고 말했다. 일단 지하주차장에 물이 차면 수압 때문에 차 문을 여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포항 아파트에서도 한 남성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차 안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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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참사…전문가 “대책 마련 시급”
지하주차장 인명 사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태풍 차바 때 울산에서도 사망자가 나왔다. 폭우나 태풍이 거듭될 때마다 지하의 비극은 반복되고 있지만, 침수 방지시설 설치에 대한 명확한 법규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
2015년 6월부터 침수위험지구에 공공기관이 건축하는 건축물에는 차수판 등 침수방지시설 설치가 의무화됐다. 연면적 1만㎡(약 3025평) 이상 민간 건축물에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는 규정은 2012년 생겼다. 2019년 행정안전부도 ‘지하 공간 침수방지를 위한 수방 기준’을 고시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민간에 적용하면 대규모 아파트 등 대형 건축물에만 해당하는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원초 인근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 차수판 설치 고정판이 보인다. 채혜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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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우면산 산사태로 피해를 겪은 서초구는 자체 지침으로 건물 신축 시 차수판 설치를 의무화했다. 서울 광진구는 이듬해 같은 규정을 도입했다. 그러나 벌칙 규정이 없는 권고 수준이어서 설치 현황에 대한 집계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서초구 관계자는 “건축 허가 규정이 많아 차수판 설치 조건만을 따로 집계하지는 않고 있다”고 답했다. 광진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하주차장 등 지하 시설 침수를 막기 위해선 차수판 높이 규정을 정하고 건축 허가 때 차수판 설치를 조건으로 내거는 등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기존 건축물에도 소급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수펌프 등의 시설도 중요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건축물에 배수설비를 증설·확충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비용 문제가 있어 건축주들에게 차수판 설치를 강제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자동식 차수판을 설치하려면 기본 9000만원 이상이 든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정부와 지자체가 비용을 지원해주면서 건축주들에게 설치를 유도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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