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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1분간 80번 여중생 닦달했다…조주빈보다 악랄한 그놈 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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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텔레그램. 사진 JTBC 방송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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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 사태’와 비슷한 미성년자 성착취물 범죄 정황이 포착돼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2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서울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관련 사건의 신속한 수사를 위해 전담수사팀(TF팀)을 지난달 31일부터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전담수사팀은 6개 팀 35명 규모로, 기존 인력에서 약 6배 확대됐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 일단 범인을 빨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을 받는 용의자 A씨 등을 수사하고 있다.



‘제2 n번방?’…경찰 수사는 왜 난항 겪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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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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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칭 ‘엘(L)’로 불리는 A씨는 2020년쯤부터 텔레그램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n번방 사태의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구속됐을 즈음이다. n번방 사건을 취재했던 ‘추적단 불꽃’의 원은지 ‘얼룩소’ 에디터는 지난달 31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A씨는 불꽃 활동가 등을 사칭하며 미성년자 여성에게 다가갔다”고 말했다. 원씨에 따르면 사칭 등의 방법으로 상대방을 안심시킨 A씨는 “당신의 사생활과 개인정보가 유포되고 있다”며 “유포범 주소를 해킹하려고 하니 그와 대화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이는 더 많은 사진 등을 받아내려는 함정이었다. A씨는 “(다른 피해자 영상을 보내며) 똑같이 찍어서 보내라” “네 친구 페이스북을 알고 있으니 뿌리기 전에 보내라” 등과 같은 협박을 했다. 1분에 80여개가 넘는 메시지를 보내며 몰아친 그의 닦달에 14세 여중생은 이성을 잃고 하룻밤 새 50개가 넘는 성적 사진·영상을 보냈다고 한다. 이런 수법에 당한 미성년자 피해자 중 현재까지 파악된 건 초등학생 포함 6명이다. 경찰 등은 관련 성착취물이 350여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A씨의 기본 수법은 n번방 사태의 조주빈 방식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 사람은 미성년자를 유인하거나 협박해 성착취물을 뜯어냈다. 다만 A씨는 고정 운영방을 일정기간 유지하며 사람을 끌어모았던 조주빈과는 달리 텔레그램 대화방을 주기적으로 삭제했다. 통상 대화방 폭파와 개설을 반복하는 행위는 경찰 추적을 피하려는 시도다. “조주빈 검거 사례로 일종의 학습 효과가 나타난 것 같다”(경찰 관계자)는 것이다.

A씨는 텔레그램 닉네임과 아이디도 계속 바꿔가며 활동했다고 한다. 최근 관련 보도 후에는 A씨의 텔레그램 아이디가 돌연 사라져 흔적도 남지 않은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유동 IP(인터넷 주소)를 사용해 장소 특정 등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A씨가 우회 사이트를 경유하거나 한 장소에서만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는 등 하는 방법을 써 IP 추적 등을 통한 A씨 위치 확인이나 신원 파악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돈보다는 희열에서 범죄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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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성 착취 영상물을 만들어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박사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씨가 지난해 징역 42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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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조주빈과 다른 부분은 더 있다. A씨가 운영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는 금전 등이 오간 거래 내역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텔레그램은 해외 본사 위치도 명확하지 않을 정도로 보안성을 강조하는 메신저다. 그동안 텔레그램 측은 각 나라의 수사 협조 요청에도 응한 적 없다고 한다. 이 때문에 텔레그램 관련 사이버범죄 수사를 할 때는 파생된 추가 정보로 피의자 등을 찾아내는데, A씨 대화방에서는 계좌와 같은 다른 정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n번방 사태 때는 수익을 노린 성착취범의 돈의 흐름이 수사 실마리였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영상 제작·유포에서 오는 희열 등이 범죄 동기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까지는 A씨를 추적할 만한 단서가 없다”고 전했다.

따라서 이번 수사의 관건은 텔레그램 밖에서 밝혀지는 다른 정보에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 설명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텔레그램은 종단 암호화 방식을 써 수사기관 등이 서버를 들여다봐도 관련 대화 내용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사이버수사 관련 경찰 관계자는 “사이버 추적 시 로그 기록 등 텔레그램 외 다른 단서를 통해 범인을 특정한다”며 “다른 메신저보다 수사 기간이 길어질 수 있어도 다른 수사 기법을 통해 범인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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