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보고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가 2017년 9월18일 서울 종로구 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연 ‘대국민활동보고 및 이야기마당’에서 진상조사소위원장인 조영선 변호사가 경과 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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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피해를 입은 문화 예술인과 단체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재판장 문성관)는 25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피해자 500여명이 국가와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 장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3건에서 모두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부가 표방하는 것과 다른 정치적 견해나 이념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문화예술인 명단을 조직적으로 작성·배포·관리하고, 공모사업 등에서 일방적으로 배제하는 행위 등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국가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 소속 공무원들이 한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등은 정치권력 기호에 따라 지원금 지급을 차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헌법 등이 보장하는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했다”며 “건전한 비판을 담은 창작활동을 제약할 수도 있어 검열을 금지하고 있는 헌법 정신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해 정도에 따라 원고들에게 각 1000만원 혹은 130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원고들은 생존에 상당한 위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런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추가로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압박감을 겪는 등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금액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등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거나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 예술인을 관리하기 위한 명단(블랙리스트)을 만들어 정부기금 지원을 차단하는 등 배제 조치를 했다. 국정농단 수사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드러났고,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공모한 조 전 장관과 김 전 비서실장 등이 재판에 넘겨졌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로 피해를 본 문화예술인들은 2017년 2월 집단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선고는 약 5년 만에 나온 1심 결과이다. 소송을 제기할 당시 원고는 500여명이었으며 청구금액은 73억원에 달했다. 원고 중 다수는 지난 6월 법원의 화해 권고결정을 받아들여 조정이 성립됐다. 소송이 장기화하자 소를 취하한 이들도 있다. 이날 판결이 선고된 500여명은 정부가 원고의 피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 조정이 결렬된 사례 등이다.
법원은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본 예술인 등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같은 재판부는 지난 5월 독립영화를 배급·제작하는 ‘시네마달’이 유사한 취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공동으로 영화사에 8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창비 등 출판사 11곳, 서울연극협회 등이 각각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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