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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패션 화보 촬영 문제삼을 일 아니다 [핫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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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 출처 = 보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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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잡지 '보그 코리아'가 청와대에서 패션 화보 촬영을 한 데 대해 전 정권의 몇몇 인사를 비롯해 일부 네티즌들이 "국격 훼손"이라고 주장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패션은 예술의 한 분야다. 미국 최고의 미술관이라고 하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3만 5000점의 의상과 액세서리를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안나 윈투어 코스튬 센터(Anna Wintour Costume Center)의 이름은 보그의 유명한 편집장 '안나 윈투어'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프랑스 최고의 박물관인 루브르 박물관에도 의류 미술관이 따로 있다. 이미 예술과 문화재의 한 분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패션 분야의 화보를 찍은 게 왜 국격 훼손인지 알 수가 없다.

보그는 미국 백악관에서 수십 년 전부터 패션 화보를 촬영하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1943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백악관 간호사의 보조원이 모델로 나선 흑백 사진이 보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가 유명 모델인 양, 흰색 드레스를 입고 백악관의 흰색 기둥들 사이에서 촬영한 사진도 있다. 아이젠하워, 존슨, 닉슨, 포드, 레이건, 클린턴, 부시,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들이 찍은 화보 사진도 볼 수 있다.

청와대 패션 화보와 차이가 있다면 백악관은 대통령 부인이 직접 모델이 돼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반면 청와대 화보는 국내 유명 모델이 나섰다. 그렇다면 대통령 부인이 아니라 일반 모델이 화보 촬영을 했다는 게 국격 훼손이라는 건가. 나로서는 이해 불가능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모델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누운 자세로 촬영한 걸 문제 삼았는데, 이는 더더욱 납득하기 힘들다. 사진을 보면 모델이 여러 개의 의자를 이어 붙인 다음, 그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 얼굴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화보 사진에서 흔히 등장하는 자세다. 이런 자세까지 문제 삼는다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영빈관 자리였으니, 다소곳한 자세로만 화보를 촬영하라는 뜻이라면 '지금이 조선시대인가'라고 되묻고 싶다.

혹시라도 국격 훼손이라는 주장의 근저에 선민의식과 계급 의식이 잠재돼 있다면 더욱더 문제다. '청와대는 국가 원수인 대통령이 근무한 공간인데, 감히 패션모델이 와서 사진을 찍다니, 무엄한 행위다'라는 식의 위계적 사고가 반영돼 있다면, 낡은 권위주의적 문화가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를 억누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보그는 세계 최고의 패션 잡지이고, 청와대에서 화보를 촬영한 모델은 국내 정상급 모델이다. 누구 못지않은 노력과 열정으로 지금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이들이 청와대에서 패션 화보를 촬영했다고 국격 논란 운운하는 건,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수많은 사람들을 모독하는 행위일 뿐이다. '정치권력을 가진 자가 높은 사람'이라는 인식은 제발 버리기를 바랄 뿐이다.

문화재청의 반응이 오히려 걱정이다. 패션 화보가 논란이 되자 "청와대에서의 촬영 및 장소 사용 허가의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보다 면밀히 검토하여 열린 청와대의 역사성과 상징성이 강화될 수 있도록 신중을 기하겠다"라고 했다. 청와대의 역사성을 강화하겠다고 하니, 앞으로는 역대 대통령의 기록이나 활동 전시장으로 역할이 축소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서는 안된다. 문화재청은 패션 화보보다 훨씬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행사와 전시로 낡고 고루한 인식을 깨뜨리길 바랄 뿐이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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