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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단독]동의없는 ‘고무줄 근무’에 연장수당은 체불···이의제기엔 ‘징계’?[새벽배송, 안녕하신가요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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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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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말, 쿠팡 인천물류센터 노동자 정성용씨와 최효씨는 쿠팡의 물류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로부터 계약 종료를 통보받았다. 두 사람은 인천센터에서 노조 분회장과 부분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이 퇴근길 피켓팅 등을 통해 주장한 요구사항은 소박했다. 한여름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가고 겨울이면 영하로 내려가는 ‘물류센터에 냉난방기를 설치해줄 것’, ‘적절한 휴게시간을 보장해줄 것’.

회사는 “객관적인 근무평가 기준에 따라 업무 평가기준 미달로 계약을 갱신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노동자들은 사측이 이들의 노조 활동을 빌미로 계약을 해지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이들이 업무를 게을리한 적이 없는 데다, 늘 구인난에 시달리는 물류센터가 오랜 경력을 가진 노동자를 내보낸 이유는 노조 활동 말고는 없다는 것이다.



새벽배송 업체의 물류센터에서 노동자들은 안전사고와 화재위험은 물론 노동인권 침해에도 시달리고 있다. 장시간 업무의 원인인 탄력적 노동시간과 포괄임금제를 가능케 하는 규정은 많지만 정작 노동자의 결정권은 잘 반영되기 어렵다. 이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 하면 때에 따라 최대 해고까지 할 수 있는 조항도 버젓이 있었다.

이들의 노동인권 문제는 사업규모와 인력이 압도적인 쿠팡의 사례 위주로 알려졌지만 다른 업체들도 사정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사업 확장 속도에 비해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장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시간과 근무일은 회사 필요에 따라”···노동자 의견 반영은?


17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를 통해 받은 새벽배송 업체 마켓컬리와 SSG닷컴, 오아시스마켓 등의 취업규칙을 보면, 노동시간과 근무일수를 사용자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반면 노동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절차는 부족했다. 사측이 ‘고무줄 노동시간’을 강요해도 노동자가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어 SSG닷컴의 기간제·단시간 근무자 취업규칙은 “1일 근무시간은 5시간을 원칙으로 하되 업무형편, 근무형태 등을 고려해 그 시간을 별도로 정할 수 있다”며 “근로시간의 적용은 회사의 경영사정, 계절적 영향, 기타요인 등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오아시스마켓의 ‘별정직(매장·현장직) 취업규칙’도 “업무형편에 따라 교대근무 및 시차근무를 필요로 하는 직무는 출퇴근 시간 및 휴게시간을 변경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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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를 통해 받은 ‘새벽배송 3사(마켓컬리·SSG닷컴·오아시스마켓)’의 취업규칙. 조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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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규정들은 명절이나 특가 이벤트 등 작업량이 많이 증가하는 성수기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동 당국과 법원은 소정근로시간과 근무일수를 변경하려면 노동자와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업무가 몰리는 일정 기간 일을 많이 하고 다른 기간에 덜 하는 ‘탄력근로제’ 규정도 문제 소지가 있었다. 오아시스마켓의 경우 탄력근로제를 운영하겠다는 규정에 ‘노동자 범위’와 ‘유효기간’을 두지 않고 있었다. 오아시스마켓 측은 “취업규칙을 작성하면서 기본적인 원칙으로 탄력근로시간제를 표시했지만 실제 운영, 적용하고 있지 않아 구체적인 요건을 표시할 필요가 없었다”며 “실질 운영하게 되는 경우 당연히 상세 규정화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휴일·휴가 출근에서도 노동자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부족했다. “천재지변, 기타재해 또는 업무상 부득이한 때는 휴일 또는 휴가 중이라도 회사의 비상출근 명령을 받은 자는 출근해 업무해야 한다(마켓컬리)” “회사는 업무형편상 부득이한 경우 연장 및 휴일근무를 명할 수 있으며, 사원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따르기로 한다(SSG닷컴)” 등이다. 류호정 의원실은 “합의 없는 일방적 시간 외 노동 지시는 강제노동금지 위반”이라며 “특별연장노동을 원하지 않는 노동자는 이에 응하지 않을 수 있고, 사용자는 이를 이유로 불이익을 줄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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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컬리의 물류센터에서 새벽배송을 위해 준비된 물품들이 배송차량 뒤에 쌓여 있다. 마켓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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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은 고무줄인 데 비해 휴일·연장근로수당 지급은 엄밀하지 않았다. 2020년 고용노동부가 주요 온라인 유통업체에 대해 벌인 근로감독에서 마켓컬리는 휴일근로수당 516만원(107명), 연장근로수당 471만8000원(58명)을 미지급한 것이 드러났다. 393명의 연장근로 한도 위반도 적발됐다. SSG닷컴은 휴일근로수당 337만원(30명), 연장근로수당 115만6000원(1명)을 미지급했다. 양사는 경향신문에 “당시 근로감독 결과는 모두 시정조치해 개선을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오아시스마켓은 2021년 9월 재직자 43명에 998만5000원, 퇴직자 10명에 23만1000원의 연장 및 야간근로수당을 미지급한 점이 드러나 시정 조치했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6년 동안 노동자 11명과 약 2737만원의 임금체불 관련 다툼도 있었다. 오아시스마켓은 “고의적인 체불이 아니라 수당 등 비용지급에 대한 양측 의견이 달라 일어났던 것으로, 결과적으로는 모두 의견 합치가 잘 돼 종결했다”며 “6년 간 11건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건수다. 또 매장·현장노동자 등 대부분의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노조 꿈도 꾸지 마?···집회·유인물 최대 해고까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징계하는 규정도 많았다. SSG닷컴의 취업규칙을 보면 “허가 없이 회사 내에서 인쇄 유인물을 배포하거나 사내외 통신망을 통해 회사 및 상사를 비방·중상한 자”를 징계할 수 있고, “허가 없이 회사 내에서 통신망, 인쇄유인물, 집회, 연설, 시위 등을 한 자”는 해고까지 가능했다. 오아시스마켓은 “허가 없이 노동자를 선동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날조·왜곡해 유인물을 배포·유포하려다 적발돼 사업장 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회사의 위신을 추락시킨 자”나 “불순한 목적으로 사내에서 허가 없이 집회, 시위, 집단구호 제창 등 노동자를 선동 또는 소요를 획책하는 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정했다.

‘소지품 검사’를 가능케 하는 규정까지 있었다. SSG닷컴의 기간제·단시간 근무자 취업규칙에는 “회사는 사내의 질서유지와 위해 예방을 위해 사원의 출퇴근 또는 필요한 때 일정 범위 내에서 소지품의 검사 또는 검신을 행할 수 있다”고 정했다. 정규직의 경우 “회사의 승인 없이 어떤 종류의 명찰, 리본, 머리띠, 견장, 표식 등을 착용·패용하지 않는다”는 규정도 있었다.

2012년 대법원은 한 노동자가 사내 온라인 게시판에 시간 외·휴일근무 수당 지급 체계를 비판하는 글을 올려 해임된 사건에서 “타인의 명예가 훼손되거나 사실관계 일부에 허위가 있거나 표현에 다소 과장이 있더라도, 문서 배포 목적이 타인의 권리나 이익 침해가 아니라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복지 증진 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며 문서 내용이 전체적으로 진실하다면 노동자의 정당한 활동범위에 속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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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닷컴은 “취재 문의 이전부터 해당 규정들에 대한 전면적인 개정을 계획하고 준비 중이었다”며 “아직 해당 규정이 실제로 시행된 예는 없다”고 설명했다. 오아시스마켓은 “표현 자체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불순한 목적으로 다른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경우 등으로 매우 최소화해 제한한 것”이라며 “이 역시 실제 적용된 적은 없고, 당사는 노동자와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했다.

계약직·기간제·도급 등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처지인 물류노동자 특성상 적극적인 노동인권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헌법상 권리 침해 뿐만 아니라 매우 직접적인 노동권 침해 독소조항이자, 노동자들을 노동법 등 제도적 보호 바깥으로 손쉽게 내모는 것”이라며 “이런 취업규칙은 노동자 대부분이 모르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고 했다.

류 의원은 “임금체불은 임금으로 생활하는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위헌·위법한 취업규칙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며 노조 활동을 옭아매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노동부가 물류센터 전반에 대한 적극적인 근로감독을 통해 기초노동질서를 바로잡고, 노동인권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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