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석표 베네딕토16세 “앤서니 홉킨스와 다를 것”
남명렬표 프란치스코 “나의 해석, 판정은 관객몫”
연극 <두 교황>은 2인극에 가깝다. A4용지 102쪽 분량의 대본 가운데 두 교황의 대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에이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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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무대에 오르면 내용이나 배역 등을 조금도 바꿀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연극. 이런 이유로 생존 인물 연기엔 신경이 더 쓰이기 마련이다. 그 배역이 교황이라면 압박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영화로도 제작돼 화제를 모은 <두 교황>이 국내 연극 무대에 올려진다. 관록의 두 배우, 서인석(73)·남명렬(63)도 전·현직 교황을 연기해야 하는 부담을 토로했다.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두 배우는 막 리허설을 끝마치고 나오는 참이었다.
“추앙받는 교황의 이미지를 훼손해선 안 되지 않겠나. 원작 대본에 충실하려고 한다. 단어 하나하나가 걸리니 고민이 많다.”(서인석) “프란치스코 교황은 워낙 활동적인 분 아닌가. 말 한마디가 이슈가 되는 현직 교황 역이니 상당히 부담스럽다.”(남명렬) 즉흥연기로 극의 재미를 더하려고 대사라도 잘못 비틀었다가 엉뚱한 논란으로 번질까 하는 우려다. 연륜의 두 배우는 그럼에도 좀처럼 기회가 드문 교황 연기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이 연극의 대본을 처음 받은 게 2020년이다. 대본이 영화보다 더 재미있었다. 겁은 났지만 놓치고 싶지 않았다.”(남명렬) “우리는 우리 식대로 해석해 연기할 거다. 판정은 관객 몫이다.”(서인석) 서인석에게 이번 작품은 제작사 에이콤 윤호진 예술감독과 함께하는 일곱번째 연극이다.
퇴임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역이 서인석, 현직 교황 프란치스코 역이 남명렬이다. 12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서인석은 연기 폭이 넓다는 평을 그동안 들어왔다. 로맨스물, 가족 드라마, 코믹 시트콤에 두루 출연했다. 중년 이후엔 주로 사극에 출연했는데, 거칠고 호방한 배역에 능했다. 남명렬은 140편을 웃도는 작품에 출연했다. 올해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근엄하고 진지한 지식인 연기가 일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두 사람이 같은 작품에 출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배우 서인석과 남명렬(오른쪽)이 한전아트센터 연습실에서 연극 <두 교황> 리허설을 하는 장면. <두 교황>은 영화보다 연극이 먼저였다. 에이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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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두 교황>은 2019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돼 호평받았다. 영화에서 앤서니 홉킨스(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조너선 프라이스(프란치스코 교황)가 선보인 명품 연기가 뇌리에 박혀 있다는 이들이 많다. “앤서니 홉킨스와 닮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캐스팅됐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천하의 앤서니 홉킨스와 내 연기를 비교하려 하는데 고민이 없을 수 없다.” 서인석은 이 대목에서 헛기침을 했다. “앤서니 홉킨스 흉내 내기를 할 수는 없다. 내 방식으로 파고들 생각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연기하는 남명렬이 거들었다. “앤서니 홉킨스의 조금 괴기하고 냉소적이며 인간미 떨어지는 연기가 꼭 옳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분의 베네딕토 16세 연기가 기준은 아니라고 본다.” 남명렬의 추임새가 이어졌다. “앤서니 홉킨스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를 영화 속 캐릭터에 차용했을 뿐 실제 베네딕토 16세란 인물은 다를 수 있다. 희로애락을 지닌 ‘서인석표 베네딕토 16세’를 기대해도 좋다.” 남명렬의 응원에 고무된 서인석은 “명심하겠다”며 남명렬의 작품 분석 능력을 상찬했다. “남 배우가 ‘이 대목은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면 대부분 수용한다. 무서울 정도로 날카롭고 명쾌하게 작품을 분석하는 사람이란 걸 이번에 알았다.”
남명렬은 ‘연극의 장르적 특성’을 강조했다.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이 영화와 다르다는 거다. “영화에서는 클로즈업 기법을 통해 미세한 눈의 움직임으로 인물의 의식의 흐름을 잡아낸다. 1000석 가까운 극장 무대에서 그런 식으로 연기하면 관객이 알 수가 없다. 무대에선 큰 동작에 격렬한 감정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는 “연극과 영화 속의 캐릭터가 굉장히 다를 것”이라며 “어깨를 휘게 한다든가, 격렬하게 성토한다든가, 벌컥벌컥 화를 낸다든가 하는 강렬한 표현이 없으면 흘러갈 수가 없는 게 연극”이라고 했다.
<두 교황>은 사실 영화보다 연극이 먼저였다. 2019년 6월 영국에서 연극이 초연됐고, 그해 연말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뉴질랜드 태생의 언론인 출신 원작자 앤서니 매카튼은 실재 인물의 미세한 심리를 다룬 작품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록밴드 퀸의 프레디 머큐리를 다룬 <보헤미안 랩소디>,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을 그린 <다키스트 아워>,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스토리를 담은 <사랑에 대한 모든 것> 등을 그가 썼다.
연극 <두 교황>에서 퇴위한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현직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연기하는 배우 서인석과 남명렬. 두 사람 외에 신구-정동환, 서상원-정동환 조합 등 관록의 배우들이 무대에 오른다. 에이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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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전·현직 교황의 대화가 주조를 이룬다. “사일런스! 더 이상 주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나는 더 이상 성좌에 앉아 있을 수가 없네.” 서인석은 베네딕토 16세가 퇴위 결심을 밝히는 이 대사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남명렬은 변화와 타협에 관한 두 사람의 대화를 명장면으로 꼽았다. “프란치스코가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도 변화한다’고 하자 베네딕토 16세는 ‘주님이 변하고 움직이신다면 우리는 주님을 어디서 찾느냐’며 ‘변화는 타협’이라고 반박한다. 그러자 프란치스코는 ‘우리가 같이 움직이면서 찾아야 한다’라고 응수한다.” 남명렬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두가지로 간추렸다. “먼저, 변혁의 시대에 진리는 늘 변하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리고 변화냐 타협이냐의 딜레마에서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이다. 두 교황의 대립이란 외피를 썼지만 근본적으로 개인과 사회는 어떻게 연결돼야 옳은가, 어떤 시각으로 이 사회를 바라보고 어떤 선택을 할 건가에 대한 얘기다.” 남명렬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각을 지지하는 입장”이라며 “내가 지금은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한때 해방신학에 심취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전·현직 교황의 대화가 주조를 이루다 보니 이 연극은 거의 2인극에 가깝다. A4용지 102쪽 분량의 대사 가운데 대부분이 두 사람의 대화다. 러닝타임도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해 165분에 이른다. 첫 리허설이 지난 6월20일이었다. 다른 연극에 견줘 일찍 연습을 시작한 편이다. 서인석은 “리허설을 하루만 쉬어도 느낌이 다르다. 처음엔 벽이 있었는데 이제 남 배우가 프란치스코로 보이기 시작한다”며 웃었다. 남명렬도 “이제 거의 다 호흡을 맞췄다”고 호응했다. 서인석-남명렬 외에 신구-정동환, 서상원-정동환 조합으로도 공연한다. 전세계 최초의 라이선스 공연이다. 8월30일부터 10월23일까지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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