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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용산 100일’…출퇴근·빵집쇼핑·집무실 집회금지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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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김미나의 정치적 참견 시점

‘출근 못한 대통령’ 논란…취재진·참모진 거리 가까워져

주말 쇼핑 등 탈권위 의도에 돌발행동·시민불편 지적도


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호국영웅 초청 소통식탁’에서 참석자와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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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17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다. 청와대 입성을 거부하고 우여곡절 끝에 열어젖힌 ‘용산 시대’도 벌써 100일이다. 탈제왕적 소통 행보를 약속하며 시작된 ‘용산 시대’는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가 됐을까.

대통령의 출퇴근…한 건물 쓰는 참모들 “스스럼없이 만나” 장점 있지만


윤 대통령의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은 새 정부의 상징이자 용산 시대의 주요 장면이 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11일, 취임식 다음 날부터 지난 12일까지 약 100일간 총 35회의 출근길 문답을 했다. 건물을 오가는 대통령의 모습을 본 횟수는 이보다 더 많았으니, 대통령 집무실과 기자실, 참모진 업무시설을 한 공간에 모아둔 일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부인할 수 없다. 출근길 대통령의 발언, 걸음걸이와 표정, 제스처 등을 보면서 대통령의 의중을 판단하고 해석하는 일은 취재진에게도 가장 큰 변화로 꼽힌다. 공간적으로 떨어진 탓에 대통령이나 참모진을 보기 어려워 ‘청와대 출입기자’가 아닌 ‘춘추관 출입기자’이라고 불리던 때와 비교하면, 대통령의 출·퇴근 여부, 참모진들의 동선을 확인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아졌다.

대통령실의 업무 방식도 달라졌다는 평가다. 청와대 근무 경험도 있는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겨레>에 “대통령 집무실과 참모진 사무실이 한 건물에 모여있다 보니 오가며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고, 업무 효율도 높아졌다”며 “스스럼없이 사무실을 오가며 협업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은 훨씬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은 윤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논란을 부르면서 되레 지지율을 끌어내린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머리발언을 하고 기자 질문을 받는 식으로 수정해 대통령의 메시지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려는 모습이다. 보완한 출근길 문답을 얼마나 잘 이용할 수 있을지는 대통령실에도, 출입기자들에게도 남겨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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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19일 용산구 한 빵집에서 빵을 고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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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행보? 시민 불편 가중? 엇갈린 시선들


‘용산 시대’를 시작하면서 대통령실이 주요하게 꼽은 또 다른 변화는 ‘실천을 통한 시민 소통 행보’다. 용산 시대 초반, 윤 대통령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대통령실 인근 식당을 찾아 시민들과 어울리는 ‘깜짝’ 만남 행보를 보여줬다. 퇴근길 대형마트에서 시장을 보는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처럼 평범한 일상 속의 대통령, 탈권위적인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보는 오히려 시민 불편을 가중했다는 비판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참모진도 몰랐던 주말 백화점 구두 쇼핑이나 빵집 방문은 ‘과잉 경호’ ‘교통 혼잡 초래’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이어지면서 반발에 부닥쳤다. 대통령의 권한과 경호 범위, 방식 등이 나라마다 다른 상황에서 ‘탈권위’만을 부각하기 위해 돌발적 현장 행보를 이어가면서, 예상치 못한 시민 불편을 불러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출퇴근 상황 또한 여전히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일 수도권 집중 호우 상황에서 ‘자택 지시’를 내렸던 윤 대통령은 ‘출근하지 못한 대통령’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이달 말 용산구 한남동 옛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이사하기 전까진 서초동 자택에서 용산 대통령실을 오갈 때마다 일부 교통 통제가 여전히 불가피한 상황이다. 경호 시스템과 서울의 복잡한 도로 사정 등을 고려한다면 윤 대통령이 ‘돌발적 소통 행보’ 보다는 진정성 있는 소통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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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19일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대통령실 이전 기념 어린이·주민 초대 행사 ‘안녕하세요! 새로 이사 온 대통령입니다’에서 참여 주민 및 어린이들과함께 손을 흔들며 기념촬영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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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마당에서 열린 경제인·영화인 행사…‘집무실 앞 집회’는 적극 막아


15일 광복절을 준비하는 대통령실은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올해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은 용산 대통령실 건물 바로 앞에 펼쳐진 잔디마당에서 열린다. 정부 공식 기념식이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을 “시민 광장”으로 바꾸겠다는 것은 윤 대통령의 약속 가운데 하나였다. 잔디마당은 지난 5월25일 ‘2022 대한민국 중소기업인 대회’를 계기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경제인들에게 처음 개방한 뒤, 6월12일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영화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 등 영화계 관계자 초청 만찬, 19일 인근 지역주민과 어린이, 소상공인들을 초청한 ‘안녕하세요! 새로 이사 온 대통령입니다’ 행사 등이 열렸다. 과거 정부에서도 청와대 녹지원을 개방해 이런 행사들은 심심치 않게 진행해왔다.

오히려 용산 시대를 열면서 집무실 앞 집회의 자유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됐다. 최근 대통령실이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 및 시위 입체분석’(이하 시위 분석문건)이란 보고서를 작성해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의지보단 집회의 파급효과를 차단하는 방안을 모색한 일이나, 법원이 집회 허용 판단을 줄이어 내놓는데도 집회 관련 소송비용을 8000만원으로 책정했다는 소식들이 들려오면 윤 대통령에게 과연 용산을 ‘시민 광장’으로 바꿀 의지가 있는지 물음표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청와대 공간의 폐쇄성을 벗어나 늘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고자 약속드린 것이다. 물리적 공간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통의 의지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윤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지난 3월20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교수는 “청와대를 나와 용산 시대를 열었다고 소통의 질과 방법이 나아졌다고 하기엔 아직 부족하지 않느냐는 생각”이라며 “진영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 자주 식사하고 소통하면서 장기적인 소통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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