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여성 인권 상황 악화...학교도 못 가
사회 활동하는 여성 수도 급감...경제도 어려워져
한 탈레반 전사가 13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옛 대통령궁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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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일, 자유!" "우리는 무시당하는 것에 진저리가 난다!"
13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교육부 건물 앞. 얼굴을 내놓거나 마스크를 쓴 일부를 빼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르카를 덮어쓴 여성 40여 명이 울부짖었다. 그들의 손에는 '8월 15일은 블랙데이'라고 쓰인 팻말이 들려 있었다. 15일은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점령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탈레반의 억압을 상징하는 부르카로 전신을 감싼 여성들이, 여성 인권의 암흑기였던 탈레반 치하 1년을 몸소 보여주며 시위에 나선 것이다.
불과 1년 만에 "집이 세상의 전부" 된 여성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이날 탈레반이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허공에 총을 쏘고, 총대로 이들을 구타했다고 AFP통신을 인용해 전했다. 시위에 참여한 무니사 무바리즈는 "탈레반이 우리를 침묵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며 "여성의 권리를 위해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3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여성들이 '8월 15일은 블랙데이'라고 씌여진 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카불=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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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도 탈레반 집권 1주년을 맞아 "탈레반이 아프간의 인권 시계를 20년 전으로 되돌렸다"는 비판 기사를 내보냈다. 폭압적 이슬람 근본주의로 아프간을 통치했던 1996년으로 회귀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병 인도를 탈레반이 거부하자 아프간을 침공해 이들을 몰아냈다. 하지만 20년 만인 지난해 8월 군대를 철수하자마자 탈레반은 다시 정권을 장악했다.
재집권한 탈레반은 "여성 인권을 존중할 것"이라고 공표했지만 하루도 안 돼 부르카를 입지 않은 젊은 여성이 길거리에서 사살되는 일이 벌어졌다. 여성들은 항상 집에 머물러야 하고, 남성을 대동하지 않고는 밖에 나갈 수도 없다.
여학교도 일제히 문을 닫았다. 탈레반은 중·고교 여학생의 등교를 전면 허용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하고도 지난 3월 새 학기 첫날 말을 바꿨다. 탈레반 재점령 이후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만 지내 온 페레슈타 알리야르(18)는 "집이 내 세계의 전부가 됐다"며 "같은 반 친구들처럼 언젠가 이 나라를 떠나겠다는 희망으로 살고 있다"고 NYT에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부르카를 입고 있다. 칸다하르=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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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언론인 76% 쫓겨나… 언론계·경제도 암흑기
탈레반 치하 1년간 사회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던 여성들도 속속 자취를 감추고 있다. 특히 여성 언론인 76%가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언론 매체의 40%가 폐간당하기도 했다. 탈레반 지침에 따라 톨로뉴스 등 아프간 주요 방송사 여성 앵커는 얼굴을 가린 채 눈만 내놓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슬람에 반하거나 탈레반을 모욕하는 보도 역시 금지다.
일하는 여성에 대한 압박도 커졌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탈레반 점령 직후인 지난해 3분기 여성 고용은 16% 급감했다. 세계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여성 소유 기업의 42%가 문을 닫았다고 밝혔다. 여성의 공직 복귀 역시 제한됐다.
그러는 사이 경제 위기는 더욱 심화됐다.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에다 30년 만의 가뭄까지 겹치면서 인구 절반이 극심한 기아에 직면해 있고, 주민의 90%가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카불에 사는 모하마드 나시르(79)는 "굶주린 사람들이 썩은 빵을 줍고 있었다"며 "여태껏 살면서 그런 장면을 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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