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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사람과 법 이야기] 2022년 여름, 재난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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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온통 난리다. 주말의 풍경은 어수선하다. 지난 한 주 동안 서울 등 수도권과 전국에 걸쳐 내린 폭우로 인해 많은 인명과 재산의 손실이 발생했다. 다음주에도 만만찮게 비가 내릴 것이 예보되고 있어 재난 상황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란 말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 월요일(8월 8일) 온종일 내린 장대비는 서울 이곳저곳에 큰 혼란을 초래했다. 밤이 되자 도로는 하수관로로 역류한 빗물로 인해 물바다로 변했다. 필자도 그날 밤길에 교통 혼잡을 뚫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에 상황을 보니 간발의 차이로 위험에서 벗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여차했으면 물속에 차를 놓고 나오는 일이 생겼을 수도 있었겠군.

그뿐만이 아니다. 뚜껑이 열린 맨홀 구멍으로 행인이 빠져 실종되고 지하주차장, 반지하 방에 들이닥친 급류로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무정한 자연재해 앞에서 누구든 그때 그 상황에 부닥쳤더라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날벼락이었다.

위험은 바로 옆에 도사리고 있었다. 비교적 안전한 곳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시스템이 갖춰져 과거 장마철만 되면 반복적으로 겪었던 수해 사태 정도는 벗어났다고 여겼다. 간혹 다른 나라의 물난리 외신 보도를 전해 들으면서 그저 남의 일 정도로 치부하기도 했다. 외국에 사는 지인들이 보도를 통해 우리나라 수해 소식을 들었는지 걱정을 해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를 몇 통 받으면서 낯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이번 폭우는 기상대 관측 이래 시간당 강우량으로는 최대치를 기록했단다. 한편으로는 이번처럼 시간당 100㎜를 넘는 폭우는 벌써 여러 차례 있었고 그때마다 침수 상황을 초래했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저지대에 속하는 강남역 인근 지역은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음을 이미 잘 알고 있었는데 막대한 예산이 드는 사정 때문에 여의치 못했다는 것이다.

만일 예상할 수 있었던 재난에 대한 방비가 미흡했다면 이런 재난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재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법적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과거 1980년대 상습적 수해 지역이었던 망원동의 집단소송 사건의 기억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불행은 한꺼번에 닥친다고 했던가. 연초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온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에 더하여 치솟는 물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의 질곡, 북핵 위협을 위시한 동북아 정세, 어지러운 정치 현실 등등. 이 여름은 폭우와 폭염 속에서 기후위기의 불길함까지 고스란히 체감하며 시름을 더욱 깊어지게 한다. 필부의 한낱 고민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이 모든 난제의 장벽 앞에서 무력감으로 우울증만 도지는 듯하다.

차제에 국회의원들이 재난 복구 현장에 갔다가 벌인 일이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그들이 재난 복구를 위해 솔선수범한다는 보도는 이제 큰 감흥으로 다가오긴 어려울 성싶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재난 복구는 시스템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국회의원까지 나서야만 되는 처지가 됐다면 그런 나라는 볼 장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오죽했으면 이렇게라도 해야 했을까 하는 안쓰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현장에서 어느 국회의원이 한 실언 때문에 문제가 더 크게 불거졌다. 사진 잘 나오게 비가 왔으면 싶단다. 재난 현장에 걸맞지 않은 이 말 때문에 한동안 구설거리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꽤 오래전 어느 해, 물난리가 난 때의 한 재난 보도가 기억난다. 그때 방송기자는 폭우로 인해 시시각각으로 수위가 올라가는, 하천 범람의 일촉즉발 위기를 현장에서 생방송으로 전하고 있었다. 위험 한계치를 넘겨 올라가던 수위가 어느 순간 멈추면서 반대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아아, 안타깝습니다!"

웃음거리를 잃어버린 난국이지만, 간혹 귀를 의심케 하는 엉뚱한 실언으로 헛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들이 있기는 하다.

재해로 아픔을 겪고 있는 분들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지혜와 합심으로 이 위기 또한 잘 극복해 내길 기원한다.

매일경제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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