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7 (수)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K팝은 흑인음악이다?... "역사와 감성, 한국인과 공명"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K팝 인기 요인 분석한 '케이팝은 흑인음악이다' 펴낸 크리스털 앤더슨 교수 인터뷰
한국일보

2020년 11월 미국 ABC방송의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해 히트곡 '다이너마이트' 퍼포먼스를 선보인 방탄소년단. '다이너마이트'는 미국 흑인음악 전문 음반사 모타운 소속이었던 마이클 잭슨을 연상시키는 평가를 받았다. 하이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K팝은 흑인음악이다’. 현대 대중음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리듬앤드블루스(R&B), 솔, 힙합, 로큰롤, 펑크(funk), 재즈, 블루스 등이 모두 흑인음악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K팝이 흑인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 음악을 뒤섞어 진화한 K팝이 여전히 흑인음악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까.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된 ‘케이팝은 흑인음악이다’는 미국 조지메이슨대 아프리카계 미국학과와 예술대학에서 강의하는 크리스털 앤더슨 교수가 K팝의 전 세계적 인기 비결을 흑인음악과의 연관 속에서 분석한 책이다. 원제는 오히려 다소 밋밋하다. ‘서울의 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대중음악과 K팝(Soul in Seoul: African American Popular Music and K-Pop)’. 11일 이메일로 만난 앤더슨 교수는 “K팝을 흑인음악의 한 형태라고 부르는 건 지극히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책 제목만 보면 흑인음악의 우수성을 자랑하려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지만 앤더슨 교수는 “복잡한 문화적 역동성”을 밝히면서 “흑인음악의 감성적 의미를 따르면서도 한국 문화의 본질적인 요소를 전 세계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K팝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는 K팝의 흑인음악 인용을 “모방이 아닌 각색(adaptation)”이라고 정의했다.

“K팝에는 흑인음악과 한국적 프로덕션, 프로모션이 합쳐져 있습니다. K팝 프로덕션을 한국적으로 만드는 것은 다양한 장르와 음악적 요소를 뒤섞는다는 점이에요. ‘지나치게 흑인 중심적’이라고 여긴다면 그건 우리가 오랫동안 들어오고 있는 음악에 흑인음악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그 역사가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해서일 겁니다.”

앤더슨 교수는 책에서 199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주요 K팝 음악의 곡 구성 방식, 창법, 춤, 의상 스타일, 프로듀싱 등 여러 측면에서 흑인음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꼼꼼히 짚어낸다. 실제로 방탄소년단의 아버지라 불리는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은 2017년 기자간담회에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사랑하는 힙합으로 대변되는 흑인음악 기반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녹여 진정성을 지킨 점”을 해외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샤이니의 태민, 동방신기의 유노윤호 등 K팝 그룹 멤버들은 자신들에게 영향을 준 인물로 마이클 잭슨을 거론하고, 원더걸스는 ‘노바디’로 활동할 당시 흑인 여성 그룹 수프림스의 스타일을 차용했다.

앤더슨 교수는 K팝 기획사의 연습생 시스템도 일본의 아이돌 제작 시스템보다는 모타운 설립자 배리 고디의 제작 방식과 비슷하다고 분석한다. 그는 “1950~1960년대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흑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뒤엎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음악가들을 배출하려 했다”면서 “음악뿐 아니라 연기, 외국어, 발언, 모델 등 다양한 분야의 재능을 끌어올려 다차원적인 음악가를 만들고 전 세계 여러 문화권에 통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일본 아이돌 시스템보다는 고디의 방식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J팝의 흑인음악적 요소가 K팝보다 뚜렷하지 않다는 것도 차이점으로 들었다.
한국일보

케이팝은 흑인음악이다


그는 K팝을 무시했던 평론가들이 언젠가는 ‘공장에서 찍어낸 음악’이 아니라 다른 장르처럼 ‘예술’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록이나 힙합도 처음 등장했을 땐 지나치게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것으로 여겼지만 이젠 예술로 여기는 것처럼 K팝이 무시할 수 없는 장르가 된 만큼 결국 K팝에 관심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앤더슨 교수는 10여 년 전 보이그룹 SS501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1960년대 흑인 그룹들인 템프테이션스, 글래디스 나이트 앤드 더 핍스의 춤을 떠올렸고 이후 K팝에 빠져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K팝이 R&B를 인용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대중음악을 혼합해 R&B 전통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고 했다. 앤더슨 교수는 R&B 보컬 부문에선 가수 박효신과 여성 보컬그룹 빅마마, 힙합 및 R&B 장르에선 조지, 서사무엘, 콜드, 프라이머리 등의 작업을 높게 평가했다.

박진영 이수만 양현석 방시혁 등 K팝 제작자들은 흑인음악의 영향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K팝이 이처럼 오래도록 흑인음악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온 이유는 뭘까. 앤더슨 교수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흑인음악의 감성적 요소가 언어의 장벽을 넘어 한국인들과 공명하기 때문일 것”이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한국인의 역사적 경험이 비슷한 점도 일정 부분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크리스털 앤더슨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 눌민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K팝의 미래에 대한 앤더슨 교수의 견해는 낙관적이다. 그는 “K팝에 대한 관심은 밀물과 썰물이 있을 것이고 지금 같은 정점이 얼마나 오래갈지 알 수 없으나 K팝의 인기가 이 정도로 끝날 것 같진 않다”면서 “설사 그렇지 않더라고 세계의 핵심 팬들은 K팝이 계속 유의미한 장르가 되도록 만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