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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이슈 동아시아 영토·영해 분쟁

‘4차 대만해협 위기’ 발발한다면... 과거 3차례 위기와 달리 “매우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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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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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면서 대만해협의 긴장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대만을 둘러싸고 대치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면서 대만해협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펠로시 의장이 2일 밤 대만에 도착하자 중국은 전투기를 급파해 대만해협을 횡단하며 무력시위를 벌였다. 대만 주변에서 일련의 연합 군사 행동도 예고된 상태다. 미국도 이에 맞서 핵 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호를 비롯한 전함 4척을 대만 인근에 배치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가 앞서 있었던 세 차례의 대만해협 위기와 차원이 다른 4차 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앞서 대만은 중국이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위협하는 위기를 세 차례 겪은 바 있다. 대만은 세 차례 모두 미국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중국은 1954년과 1958년 본토에서 3㎞ 떨어진 대만 진먼도를 포격하면서 대만해협 1·2차 위기를 촉발했다. 이에 미국은 대만 붕괴를 막기 위해 대만 해협에 해군력을 배치하고, 군함과 전투기 등을 동원해 중국을 압박했다. 당시 양국 간 갈등은 핵전쟁이 상정되는 수준으로까지 치달았지만, 미국과 중국 모두 확전을 막기 위해 금지선만큼은 넘지 않도록 조심했다. 마오쩌둥은 미군에 대한 공격을 전면 금지했고, 미국도 1954년 대만과 체결한 상호방위조약에서 진먼섬 등은 배제했다. 2차 위기 이후 중국군과 대만군의 진먼섬 포격은 격일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의례가 됐고, 중국은 미국과 정식 수교한 뒤인 1979년에 포격을 중단했다.

리덩후이 당시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으로 1995년엔 3차 대만해협 위기가 촉발됐다. 중국은 그해 7월 대만해협에서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고, 11월에는 대규모 상륙훈련도 진행했다. 미국도 항모전단을 파견하며 대대적인 압박을 가했다. 당시에도 미·중 양국은 선을 넘지 않도록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이 대만 근해에서 발사한 미사일 탄두는 모조품이었고, 실탄 사격도 상징적인 조치에 그쳤다. 미국은 항모전단을 파견하면서도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고 대만 관리들의 미국 방문 절차를 강화하겠다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3차 위기 이후 중국이 공격적인 군사력 확장에 나서면서 현재 상황은 앞선 위기들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이상 미국이 압도적인 전력으로 중국을 굴복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것이다. 미 국방부는 2020·2021 ‘중국 군사력 보고서’에서 몇몇 군사 분야에선 중국이 미국과 대등해졌거나 미국을 능가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미·중 관계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빗댄 안보·국방 분야 석학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서 양국이 대만 또는 중국 주변에서 국지적으로 충돌한다면 미국에 승산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이 대만 부근으로 군사력을 이동시키기도 전에 중국이 대만 장악을 끝낼 것이라고 그는 예상했다.

3차 대만해협 위기 당시 중국의 외교노선은 덩샤오핑의 ‘도광양회’(칼 빛을 감추고 실력을 기른다)에 기반해 있었다. 하지만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제 미국과 패권을 다툴 정도로 성장한 경제·군사력을 바탕으로 ‘대국굴기’를 선언한 상태다. 중국은 ‘중화민국의 위대한 부흥’을 외치고 있으며 대외 정책에서도 더는 칼 빛을 감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4차 대만해협 위기가 시작된다면 이전과는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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