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의존도 높은 韓, 무역대금결제 문턱 낮아
가상자산 투기 세력, 사전송금 제도 악용 여지
서울의 한 시중은행이 영업을 앞두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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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에서 4조원 규모의 외환 이상거래가 확인돼 논란이 된 가운데, 수출입업체 간 송금 과정 전반을 손보지 않으면 가상자산 투기 세력의 자금세탁, ‘김치 프리미엄(국내 가상화폐 시세가 해외 시세보다 높은 현상)’ 악용 문제가 근절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감독 시스템에서 이를 걸러내지 못한 이유를 찾아내 개선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가상자산 투기 세력, 무역거래 허점 노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에 확인된 은행권 외환 이상거래의 80~90%는 신용장 없이 송장(인보이스)만으로 송금하는 ‘사전송금’ 방식으로 홍콩과 중국, 미국, 일본 등으로 자금이 빠져나갔다.
사전송금이란 수출대금 전액을 수출물품의 선적 전에 외화로 미리 송금받는 방식으로, 신용장이 필요 없어 상대적으로 간편한 대금결제 수단이다. 신용장은 수입업체가 거래하는 은행이 수출업체가 발행하는 환어음의 결제를 보증하는 문서다. 물품·용역이 계약한 대로 제공됐다는 것을 입증한다. 신용장 거래 절차는 △계약체결 △신용장 개설신청 △신용장 개설·송부 △신용장 도착통지 △선적 △환어음 발행 후 매입신청 △대금지급 △환어음 및 선적서류 송부 △선적서류 도착통지 △환어음 대금결제 △환어음 대금상환 등을 거쳐야 해 무역업체 입장에선 매우 번거롭다. 이 중 한 단계에서만 하자가 발생해도 거래가 거절될 수 있다.
이에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선 사전송금 방식이 자리 잡았다. 이는 업체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정부는 무역 거래를 늘리기 위해 해외송금 문턱을 낮춰왔다. 실제로 신용장이 활용된 무역 거래는 전체의 10~15% 수준에 불과하다.
이번 외환 이상거래에 연루된 법인들은 사전송금의 허점을 악용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로부터 들여온 자금과 일반적인 상거래를 통해 들어온 자금을 국내 무역업체에서 섞어 은행을 통해 해외로 송금했다. 일선 은행 영업점 담당 직원이 실제 무역대금인지,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에 은행권 외환거래 시스템뿐만 아니라 사전송금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환업무를 담당해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반 무역대금과 가상자산 투기 세력의 자금이 섞여 들어오면 은행원 입장에서 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대로라면 이상 외환거래 사례는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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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은행 외환거래 시스템 전반 점검
이러한 가운데 금융감독원은 이번 외환 이상거래에 대한 시스템 전반을 점검하고, 업계 의견 수렴을 거친 뒤 오는 10월 중 은행권 사고예방 내부통제 개선 TF를 통해 최종 개선안을 마련해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금감원은 국가정보원, 검찰, 관세청 등 유관기관과 44개 업체, 53억7000만 달러(약 7조원) 규모의 외환 이상거래를 살펴보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여러 가지 불법적 요소가 강하게 보인다"며 "(자금이) 가상자산 거래소를 매개로 원화자산을 외화로 바꿔 유출됐다. (가상자산 투자와 관련해) 시장교란성 성격이 강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금융기관의 책임 여부를 따질 것"이라며 "우리 감독 시스템에서 왜 누락됐는지 개선방안을 마련해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답변하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서울=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2.7.28 [국회사진기자단] toadboy@yna.co.kr/2022-07-28 11:24:43/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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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은 또한 "은행 자율점검 보고가 이번 주까지"라며 "최종 보고 전이라도 문제점이 발견되면 신속한 검사 등의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번 해외 송금액이 북한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에 대한 의혹에 대해 국정원이 조사하는지를 묻는 질의에는 "해외 유출 이후 단계 부분에 대해선 검사 조사 권한이 없어서 그 이후를 직접 쳐다보고 있지는 않다"며 "다만 유관기관의 고유 업무 영역 관련 협조 요청이 있으면 법령 내에서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지난 1일부터 검사 대상을 모든 은행으로 넓혀 이상거래를 보고하도록 했다. 점검 대상 거래는 △신설·영세업체 대규모 송금거래 △가상자산 관련 송금거래 △특정 영업점을 통한 집중적 송금거래 등이다.
2021년 이후 신설된 업체 중 외환송금액이 5000만 달러 이상이거나 자본금의 100배 이상의 외환을 해외로 송금한 곳이 조사 대상이다. 또한 금감원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연계 계좌를 운영하는 은행(신한은행·전북은행·NH농협은행·케이뱅크)과 입금 거래가 빈번한 기업도 들여다본다는 방침이다. 이상거래의 대부분은 자금 흐름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로부터 시작됐다.
금감원은 지난달 22일과 29일 각각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에서 외환 이상거래 신고를 받고 현장검사를 진행했다. 금감원이 두 은행에서 파악한 외환 이상거래 규모는 총 4조1000억원(약 33억7000만 달러)이다. 우리은행에선 지난해 5월 3일부터 지난달 9일까지 5개 지점에서 831회에 걸쳐 1조6000억원(약 13억1000만 달러) 이상 외환송금이 발생했다. 신한은행에선 지난해 2월 23일부터 이달 4일까지 11개 지점에서 1238회에 걸쳐 2조5000억원(약 20억5000만 달러) 규모의 외화가 송금됐다.
아주경제=정명섭 기자 jms9@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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