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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년 역사 간직한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 보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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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은 당대 명필 한석봉 작품…"유교 문화 창달·지식 보급에 기여"

연합뉴스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 모습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한국의 서원' 가운데 한 곳이자 사적인 경북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의 중층 문루(門樓) '무변루'(無邊樓)가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올렸다고 28일 밝혔다.

무변루는 1572년 옥산서원이 창건됐을 때 함께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옥산서원은 경주 양동 마을에서 태어난 조선 중기 문신 회재 이언적(1491∼1553)을 모시기 위해 설립된 곳으로, 무변루는 정문인 역락문 안쪽에 있다. 주변 경관을 잘 조망할 수 있도록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규모로 보면 정면 7칸, 측면 2칸이며 옆에서 보면 'ㅅ'자 모양인 맞배지붕을 올렸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건물의 아래층은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위층은 지역 유생 교육 장소로 썼다.

1792년 '어제제문'(御製祭文)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는 무변루가 토론, 휴식, 모임, 숙식 공간으로 이용됐다는 기록이 있는데 역사적으로는 경상도 동부 지역에서 사대부들이 공론을 주도한 곳이었다.

사람들이 머물 수 있도록 2층에는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온돌방 옆 가장자리에는 난방이 되지 않는 누마루를 설치했다.

특히 지붕 기와에 '숭정'(崇禎), '건륭'(乾隆), '도광'(道光) 등 중국 연호가 새겨져 있어 17∼19세기에 수리됐음을 알 수 있다고 문화재청은 전했다.

관련 기록에 따르면 무변루의 현판은 당대 명필이었던 석봉 한호(1543∼1605)가 썼다. 이름은 이언적의 제자이자 선조 재위기인 1585년 영의정에 오른 노수신(1515∼1590)이 지었다고 전한다.

무변은 북송 유학자 주돈이의 글 '풍월무변'(風月無邊)에서 유래한 것으로, '경계를 없애는 곳'을 뜻한다. 해석하자면 서원 밖 계곡과 산이 한눈에 들어오게 해 그 경계를 없애는 곳이라는 의미다.

문화재청은 "무변루는 1572년 처음 지어진 이래 지금 위치를 지키며 유교 문화창달과 지식보급에 큰 역할을 해왔다"며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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