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7 (월)

이슈 물가와 GDP

美인플레 예견한 서머스 "물가 잡으려면 5년간 5% 실업률 감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엇갈리는 美 경기진단 ◆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과 공급망 부족사태에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식량난까지 겹치면서 미국 6월 소비자물가지수가 9.1%까지 치솟은 가운데 경기 침체 진입에 대한 논쟁이 불붙고 있다. 물가가 계속 상승하는 가운데 불황이 이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나오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24일(현지시간) NBC방송에 출연해 미국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이 1분기(-1.6%)에 이어 2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하더라도 경기 침체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2분기 경제성장률 속보치는 28일 발표된다. 옐런 장관은 미국의 강력한 고용시장과 소비지출이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덕분에 경제성장률 둔화에도 불구하고 '얕은 경기 침체'를 예상했다. 지난해 미국 경제가 고속 성장한 데다 지난 3월부터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에 따라 기술적으로 경기 둔화로 나타나더라도 불황은 아니라는 논리다. 옐런 장관은 "경기 침체를 확실히 피할 거라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노동시장을 강하게 유지하고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같은 최근 경제현상에 대해 '완전고용 상황에서의 경기 둔화(Jobful downturn)'라고 평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당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고용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던 '고용 없는 성장'과 반대 현상이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미국 경제 연착륙 가능성을 매우 낮게 판단했다. 그는 CNN방송 인터뷰에서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금처럼 경제에 안 좋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경기 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업률 상승 고통이 발생하더라도 인플레이션 억제정책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머스 전 장관은 작년처럼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도피적인 정책을 편다면 더 많은 고통이 뒤따를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 지난해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안이하게 판단한 조 바이든 행정부를 겨냥한 발언이다. 서머스 전 장관은 지난해 초부터 인플레이션을 경고해왔고, 그의 지적은 현실이 됐다. 옐런 장관도 '지난해 물가 위험을 과소평가해서 큰 충격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지난 5월 말 시인했다. 서머스 전 장관은 연준을 비롯해 미국 정부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미 의회의 세금 인상, 수입품에 대한 관세 철폐, 의약품 가격 인하, 에너지 정책 개선, 재정적자 감축 등의 정책을 제언했다.

엇갈린 경기 진단을 내놓은 옐런 장관과 서머스 전 장관은 그동안 정부의 재정확대를 중시하는 케인스학파의 길을 걸었다.

옐런 장관은 예일대 재학 시절,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로서 금융거래에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토빈세'를 창시한 제임스 토빈 교수 밑에서 수학했다. 그는 하버드대 조교수에서 출발해 UC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에서 오랫동안 경제학 교수를 지냈다.

서머스 전 장관은 미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정부지출 확대를 중시하는 신케인스학파로 분류된다. 하버드대에서 27세에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83년 하버드대 역사상 최연소 종신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역임했다.

두 경제학자는 연준 의장 하마평에 오른 인연이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3년 10월 벤 버냉키 연준 의장 후임으로 서머스 전 장관을 임명하려고 했지만 의회 반대에 직면해 옐런 장관을 지명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공격적으로 단행하면서 침체 우려는 커지고 있다.

미 주택시장 축소, 대표적 기술기업들의 인원 감축, 실업수당 청구건수 증가 등 경제 성장세 둔화를 나타내는 지표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대 교수는 최근 "미국 경기가 식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해 코로나19가 한창 확산되던 시기에 '1970년대식 인플레이션 발생 위험이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가 최근 사과하기도 했다.

마이클 게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미 경제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 하반기부터 약한 경기 침체가 시작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블룸버그 소속 경제분석가들도 경기 침체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애나 웡, 일라이자 윙거, 옐레나 슐라티예바 등 경제분석가들은 "향후 24개월 안에 경제가 둔화할 가능성은 100%에 달한다"고 전했다.

앨런 블라인더 전 연준 부의장은 현재 진행 중인 통화정책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쳐 앞으로 2~3년 동안 비슷한 경제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블라인더 전 부의장은 "최근 식품·에너지 가격 하락세를 보면 경제 연착륙 가능성이 조금 커졌다"면서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확실한 상황인 만큼 경기 후퇴 가능성은 여전히 50% 이상"이라고 밝혔다.

로런스 메이어 전 연준 이사는 "연준은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기업과 직장인들은 물가를 더 상승시키는 방향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게 돼 결국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내년 미국 GDP가 0.7% 감소하고 실업률이 5%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워싱턴 = 강계만 특파원 / 서울 = 박민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