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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이슈 물가와 GDP

외국인 채권매입 1년새 36% 뚝…달러 붙잡아둘 고육책 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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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동치는 물가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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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우며 외국인 채권 투자에 대한 비과세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속내는 달러당 원화값 급락과 물가 급등세가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기자들과 만나 "향후 재정 수요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외국인들의 한국 국채시장 투자를 유인할 필요가 있다"며 "국채 수요 기반을 확대하고, 시장을 선진화하기 위해 세계국채지수(WGBI) 가입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국채를 사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이자·양도소득세를 면제해 글로벌 자금을 끌어와 국내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선진국 국채 클럽인 WGBI 편입도 노리겠다는 복안이다.

실제 일본과 호주, 싱가포르, 중국 등은 채권 비과세 조치 등을 단행해 전 세계 투자기관이 국채를 사들일 때 지표(벤치마크)로 삼는 WGBI에 편입됐다. WGBI는 영국 런던증권거래소(LSE) 산하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그룹이 관리하는 지수로 미국, 일본, 영국 등 23개국 국채를 아우른다. 이를 추종하는 자금은 2조4000억달러(약 3200조원)에 달한다. 자본시장 반응도 긍정적이다. 한국이 외국인 채권 비과세 등으로 전 세계 기준을 충족해 WGBI에 편입되면 국채 시장에 막대한 글로벌 자금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DB금융투자는 한국이 WGBI 편입에 성공하면 월간 채권 유입액은 15억~2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처럼 국내에 외국 자금이 대거 유입되면 원화값 안정에 큰 도움이 되며 이는 수입물가 안정으로 이어져 국내 물가 급등세를 한풀 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대책으로 외국인의 국채 투자가 늘면 달러당 원화값이 상승하고, 그 과정에서 수입물가가 낮아져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국채 투자 비과세 방안이 직접적인 물가 대책으로 고안된 건 아니지만, 간접적인 물가 안정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외국인 채권 투자자금에 혜택을 부여해 국채와 외환시장, 나아가 물가까지 안정시키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실제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외국인의 채권 투자에 대한 비과세는 2009년 5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약 1년7개월간 이뤄진 바 있다. 그러나 자본 유출입 변동성이 커지자 2011년 1월 비과세 혜택을 폐지하고 과세로 환원했다.

또한 미국의 빠른 정책금리 인상으로 이달 말 한미 기준금리 역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국내에서 자금을 빼고 있는 외국인들을 붙잡을 수 있을지 의견이 엇갈린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워낙 외환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니 정부로서는 쓸 수 있는 수단은 다 써보는 것"이라며 "(외환시장 불안은) 외국인 자금을 끌어오는 정책 하나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고강도 미국발 금리 인상이 예견된 올해 들어 외국인 채권 매입세는 부쩍 주춤해졌다. 외국인은 올 1분기 국내 채권을 147억5380만달러어치 매입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6.1% 급감한 것이다. 이미 상장채권은 지난달 외국인들이 9340억원어치를 순회수했다. 순회수는 거래 체결 기준으로 매수보다 매도 및 만기상환 금액이 더 크다는 의미다. 이는 2020년 12월 이후 18개월 만으로, 외국인들이 국내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6개월 연속 외국인들의 순매도가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의 국내 채권 매입 규모가 지난해 역대 최대를 기록해 거꾸로 자본 유출 위험이 커진 것도 부담이다. 지난해 외국인이 매입한 채권 규모는 737억5470만달러로 종전 역대 최대치였던 2007년(576억9000만달러)보다 27.8%나 더 많다. 만약 외국인이 더 나은 금리를 좇아 미국 등으로 빠져나가면 국내 자본시장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채권 투자자들이 장기적으로 한미 금리 차가 역전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국내 금융시장에 상당한 위험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물가 안정 기대도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 등에서는 물가 급등세가 올가을쯤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코로나19 재확산 등 대내외 여건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오히려 더 높은 상황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6월 소비자물가는 작년 같은 달 대비 6.0% 올라 외환위기였던 1998년 11월(6.8%) 이후 약 24년 만에 가장 높았다. 추 부총리는 "물가가 6월 이후 6%대에 있고 9월, 10월까지는 불안한 양상이 이어질 것"이라며 "지금 물가가 7%, 8%, 혹자는 9%(까지 갈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하는데 추가적인 돌발 상황이 없으면 그렇게까지는 가지 않고 6%대에 있긴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특별한 기상 여건 때문에 채소류 수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일시적으론 (7%대 물가가)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추 부총리는 19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과 면담할 때 한미 통화스왑 문제가 의제로 오르느냐는 질문에 "미국 재무당국자들은 통화스왑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권한이라는 점을 (지난번 한미정상회담) 당시에도 얘기했다"면서 사실상 논의하기 어려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양국 간 금융 안정, 외환시장 협력 방안에 관해 폭넓게 논의하면서 정책 공조 방안에 대한 얘기도 오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발리 = 김정환 기자 / 서울 = 안병준 기자 /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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