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수고방’ 오경순 셰프
정관스님, 요리 멘토이자 큰 어른
“자연과 사람은 하나” 라는 마음으로
식재료 본연의 맛과
먹는 사람 배려한 채식 선봬
시그니처 메뉴 새송이버섯구이
국간장·들기름으로만 조리
녹두전은 돼지고기 빠져도 고소한 맛
두수고방, 2023년 성수동 이전 계획
오경순 셰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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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 스님의 세속제자인 오경순 셰프를 만났다. 오 셰프는 정관 스님을 멘토이자 큰 어른이라고 표현한다. 처음 스님에게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레시피 없이 요리를 하고 그날그날 레시피를 바꾸는 것에 적응이 안 돼 당황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스님께서 매번 레시피가 없다고 하시니 요리를 준비하고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뜻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가 있게 되었다. 어떤 재료가 내 앞에 올지 모르니 레시피를 만들 수 없고, 식재료의 컨디션 역시 알 수 없으니 이 또한 레시피를 만들 수 없음이요, 먹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니 이 역시 레시피를 작성할 수 없는 이유란 걸 말이다.
먹는 사람을 만나봐야 그 사람이 된장이 맞는 사람인지, 고추장이 맞는 사람인지 알 수 있으며 재료 역시 계절,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조리 방법과 같이 사용하는 재료들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즉, 레시피는 먹는 사람, 그날의 환경, 재료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미리 작성하는 레시피는 정관 스님에게 사실 크게 의미가 없는 작업이었다. 어제까지 배운 조리법이 아니라 먹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조리법은 결국 먹는 사람을 배려하라는 의미였다. 그것이 식재료에 대한 유연함, 먹는 사람에 대한 배려, 조리사의 마음가짐을 기본으로하는 사찰음식의 삼덕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요리는 맛을 내는 어떤 테크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조리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하느냐로 설명할 수 있다.
오 셰프가 이끌고 있는 두수고방은 명확하게는 사찰음식은 아니다. 사찰음식의 정신을 선보이는 공간으로 종교 음식을 떠나서 건강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앞으로 지속가능한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사람도 자연에서 왔으며, 결국에는 자연이 주는 그대로의 것들을 수긍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두수고방은 출발하게 되었다.
오 셰프는 자연에서 주는 그대로의 것을 먹는 것, 자연에 순응하는 것, 그 음식의 철학을 알려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음식의 근간인 사찰 조리는 약념(양념)의 맛이 아니라 순수 자체인 자연의 맛이다. 우리 선조들에게 약념의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식재료 자체의 순수한 맛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고 할 수 있다. 약념 없이 맛을 내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나물 조리의 경우 한식은 일반적으로 데쳐서 무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데, 사찰 조리는 봄여름가을겨울에 각 식재료가 가지고 있는 성질을 살펴서 데치는 시간도 조절하고 각 사용하는 계절에 따라 약념도 조절한다. 예를 들어 여름에는 채소들이 수분이 많고 힘이 없으니까 기름을 잘 사용하지 않으며 여름의 나물들은 깨가루를 많이 사용한다. 사찰음식은 단순이 데쳐서 무치는 것이 아니라 각 재료의 성질에 따라 매우 디테일하고 섬세하다. 각 식재료가 가지고 있는 성질을 그 계절에, 그 시간에, 각각의 맛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섬세함이 숨어있다.
새송이 버섯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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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세공된 보석도 매우 가치 있지만 세공되기 전에 원석이 가지고 있는 소박함, 검박함을 알아야 세공방법이 나올 수 있다. 결국 그 성질을 알아야 한다. 미쉐린 스타 셰프들은 극세공을 만드는 숙련된 기술자라면 오 셰프 음식은 원석의 물성을 가장 잘 알려줄 수 있게, 원래의 모습을 알려주는 하나의 매개이다. 오 셰프는 연근이, 옥수수가, 쌀이 원래 어떤 맛이었는지, 어떤 향을 지니고 있는지, 어떻게 생겼었는지 사실 들여다보지 않는 이 모든 것들을 알려주고 싶어 한다. 원래의 검박함을 알리는 화려함 이전의 식재료의 맛을 알려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요리를 하고 있다. 음식과 식재료가 원래 가지고 있는 색, 맛, 향을 상기하고 싶을 때 찾아지는 공간이자 먹고 싶은 요리를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오 셰프의 첫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새송이 버섯구이로 국간장이랑 들기름만으로 조리를 한다. 흔한 버섯이고 아무 데나 손을 뻗으면 살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는데 의외로 그 풍미가 매우 고급스럽다. 친근하고 일상 속에 있는 재료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고 이질감이 없으면서 반가운 요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들어간 재료가 특별하지 않음에도 고급진 맛을 구현해 내는데 집에서도 손쉽게 따라할 수 있는 요리라는 점이 큰 특징이다.
녹두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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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녹두전. 돼지고기가 빠진 녹두전이 가장 독특한 메뉴인데, 꼭 고기가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녹두전을 맛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입으로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여태까지 내가 먹었던 독두전의 고소함은 고기가 들어가서 고소한 줄 알았는데, 고기가 빠지니까 녹두 자체의 고소한 맛을 더욱 강하게,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메뉴이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
오 셰프의 음식과 두수고방은 사찰음식이 아니라 채식을 보여주는 공간인데, 사찰음식의 정신을 그 뿌리에 두고 있으며 자연의 이야기를 사찰음식의 정신을 빌려서 선보이는 공간이다. 사찰음식의 정신은 자연과 사람이 하나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내년에 성수동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현재 입지가 접근 용이성이 너무 떨어져서 손님들의 요구와 접근 편의성을 위해서 이전을 결정했다. 전통 한식의 채식을 도심에서 많은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과감하게 도심으로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음식은 직업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설명하는 오 셰프는 자연과 음식과 사람을 이어주고 함께 살아나가는 방법을 고민하기 위해 계속 공부하고 경험하고 손님들과 함께 답을 찾아나가고 있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hannah@food-fantas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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