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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곁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죠" 22년간 노숙인 치료한 의사 최영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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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성천상 수상자, 내과전문의 최영아씨
의대생 시절 봉사 中 '노숙인 의료공백' 목격
"주소지 없어도 '행려' 아닌 '주민'…의료시스템 발전"
한국일보

의사 최영아씨가 지난달 27일 서울 은평구 소재 서울시립서북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JW중외제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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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개원도 나름 힘들고 대학병원에 남아 교수직을 해도 어려움이 많죠. 저는 '의사는 환자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아픈 곳 많고 의사 소통이 힘든 노숙인을 치료하는 것입니."

'노숙인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제10회 성천상 수상자'로 선정된 내과 전문의 최영아(52)씨는 6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노숙인 무료 진료를 이어온 이유를 묻자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최씨가 처음 노숙인의 의료 공백을 마주한 건 1990년 이화여대 의예과 2학년 재학 중 나간 무료급식 봉사 활동에서다. 그는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줄 선 노숙인들을 '수백 명의 환자'로 기억했다. 최씨는 "씻지 못한 환자 수백 명이 빗물 섞인 밥 한 끼로 하루를 버텨야 했다"며 "노숙인들의 건강 상태를 가까이에서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의대생의 눈으로 볼 때 병에 걸린 이들이 많아 보였고 정신적·육체적으로 아픈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다 본과 1학년 때 현장에서 직접 본 열악한 진료 환경은 최씨가 노숙인 진료에 몸을 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길거리에서 피를 토하는 노숙인과 함께 시립병원에 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어요. 딱 봐도 중환자인데 감옥처럼 생긴 방에서 치료받는 걸 보고 왜 이렇게 해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내과전문의 최영아씨


제때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노숙인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질 순 있지만, 직접 노숙자 진료에 뛰어드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웬만한 각오와 다짐 없이는 어려웠을 것 같다고 묻자 "노숙인 진료는 고생스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의사인 저를 성장시켜준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노숙인들은 질병을 많이 앓고 신경정신과 문제를 지닌 경우도 있어서 그들을 진료하는 일 자체가 의사인 저를 훈련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2001년 내과전문의 자격을 얻은 최씨는 그 후 22년 동안 노숙인 무료 진료를 이어 왔다. 그동안 다일천사병원과 요셉의원, 서울역 다시서기의원, 도티기념병원 등 줄곧 자선병원에서 근무한 그는 현재 서울시립서북병원에서 노숙인 진료에 힘 쏟고 있다. 대장항문암 전문외과의로 일했던 남편 김유진(54)씨도 현재 서울 영등포구 소재 노숙인 진료소 '보현의 집'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학병원 교수직을 사양하고 개원도 하지 않은 최씨는 "밥 먹고 사는 데는 별 문제 없다"며 시립병원에서 공무원으로서 일하는 현재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노숙인, 평생 겪을 내과 질병 다 앓아…의료만으론 부족"

한국일보

의사 최영아씨가 지난달 27일 서울 은평구 소재 서울시립서북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JW중외제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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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노숙인을 진료할 때 어려운 점은 없느냐는 질문에 최씨는 "(위생문제는) 하루이틀 겪는 일이 아니라서 괜찮다"고 덤덤하게 답했다. 더러 지저분한 상태로 입원하는 환자도 있지만 최씨는 "이곳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은 거리에서 상태가 심각해질 대로 심각해진 환자가 지저분한 상태로 입원해도 '병원에서 며칠 지내며 씻으면 깨끗해질 텐데'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은 옷이나 목욕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 마련돼 있어서 병원을 방문하는 노숙인들이 옷을 갈아입고 목욕도 하고 온다"며 "굳이 말하지 않으면 노숙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칠 정도"라고 부연했다.

노숙인들은 주로 어떤 질병 때문에 고통받고 있을까. 최씨는 "상태는 의사 소통이 쉽지 않은 치매 노인과 비슷한데 나이만 어리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난치병이나 희귀병을 앓는 게 아니라 당뇨병이나 간경화, 난청, 실명처럼 초기에 한두 가지 약으로 조절 가능한 질병들이 노숙을 길게 할수록 순식간에 악화된다"는 것이다. 그는 "집 없이 노숙인 시설과 거리를 떠돌며 오래 살다 보면, 밥 못 먹고 잠 못 자고 못 씻고 정신적으로 불안해진다"며 "기본적인 위생과 영양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니 사람이 평생에 걸쳐 천천히 겪을 질병을 이들은 한꺼번에 앓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료만으로는 부족하다' 느낀 최씨는 노숙인들이 다시 가정과 지역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의식주와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종합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에 2012년 민간단체 '마더하우스' 설립에 참여해 여성 노숙인에게 보호 쉼터를 제공했고 2016년부터는 비영리법인 '회복나눔네트워크'를 세워 노숙인 대상 임시 주거 등을 지원하고 있다. 필요한 비용은 '한국누가회' 등 의료인 동료들의 모금으로 댔다.

2015년 출간한 그의 책 '질병과 가난한 삶'을 통해 최씨는 그동안 진료한 노숙인의 주요 질병 분석뿐만 아니라 노숙인 집단 생활 시설과 사회복지 서비스의 한계 등 노숙인을 위한 법과 정책을 진단했다. 최씨는 "2012년 노숙인복지법 시행과 함께 노숙인의 의료 문제는 점점 공공병원이 감당하게 됐고 공공병원의 환경이 매우 좋아졌다"며 "사회복지 서비스도 임대주택 등 '주거우선'이 실현되는 방향으로 옮겨 가고 있는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행려1,2,3에서 '주민'으로…법 제정 후 '의료 서비스 안'으로

한국일보

의사 최영아씨가 서울 은평구 소재 서울시립서북병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JW중외제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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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가 노숙인 진료를 시작한 20여 년 전만 해도 노숙인 환자는 '행려1, 2, 3'으로 기록될 뿐 실명으로 진료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2년 노숙인복지법이 시행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주소지가 없는 노숙인도 실명으로 진료받는 '주민'이 됐다"며 노숙인 시설 거주자 전체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됐을 때 진단받자마자 치료제 팍스로비드를 놔줄 수 있을 정도로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어느 한 사람의 희생이 아닌 시스템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최씨는 자신의 환자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거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 감동을 느낀다고 말한다. 또 "환자를 시설에 데려다 놓는다고 새로워지는 게 아니라 꾸준히 관계를 유지할 때 환자의 삶이 변한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는 이어 "마치 어린 아이가 자라는데 마을이 필요하듯 노숙인 한 사람이 소생하기 위해서도 많은 사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천상은 JW중외제약 창업자인 고(故) 성천 이기석 선생의 '생명존중' 정신을 기려 사회에 귀감이 되는 참 의료인을 발굴하기 위해 JW그룹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이 2012년 제정했다. 음지에서 묵묵히 헌신하며 인류 복지 증진에 공헌한 참 의료인을 매년 1명씩 발굴하고 있으며, 올해 10회를 맞았다. 시상식은 9월 21일 서울 서초구 JW홀딩스 본사에서 열린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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