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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시골살이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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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권영란 | 진주 <지역쓰담> 대표

이젠 어디 면소재지쯤에서 살면 어떨까. 몇달 전부터 산청, 사천 몇몇 동네를 기웃거렸다. 그저 사는 곳을 바꿔 좀 다르게 살아보자 싶었는데 당장 주변에서 목소리 높인다. 열이면 열, 나이 들수록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 가깝고 교통 좋아야 하고 도서관·복지관 등 시간 보낼 곳이 있어야 한단다. 위협에 가까운 걱정만 있을 뿐,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언은 없었다. 힘드나, 불안이 슬슬 밀려왔다.

지리산 자락에는 귀농귀촌한 이들이 많다. 20년 전만 해도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교육공동체 마을을 이룬 곳이 있는가 하면 탈자본주의를 걸고 생태적인 삶을 살기 위해 들어온 이들이 두드러졌다. 단순히 조금 덜 바쁜 삶을 기대하며 시골살이를 시작하는 중년층도 많았다. 지금은 좀 달라졌다. 귀촌을 선택한 20대도 제법 눈에 띈다. 시설농사를 배우는 이도 있고 도시에서 시골로 주거지를 옮겼지만 자기 일을 그대로 가져와서 하는 이도 있다. 시골살이를 시작하며 책방, 카페 등을 창업한 청년들도 있다. 덕분에 산골에서 카페를 만나고 그림책을 사서 읽게 됐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에는 마을 카페 ‘안녕’이 있다. 지리산 둘레길 인월∼금계 구간에 자리잡고 있어 봄 여름 가을 겨울 걷기여행자가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이다. ‘안녕’은 휘근씨와 보름씨가 운영하고 있다. 학교와 직장을 전전하던 서울살이를 접고 결혼 뒤 이곳에서 아이를 낳고 자리잡은 지 7년이 됐다. 산골 마을치고 가구 수가 제법 많은 창원마을에서 이들 부부는 가장 젊은 사람들이다. 게다가 바로 위 ‘산촌민박 꽃별길새’는 휘근씨 부모인 석봉씨와 노숙씨가 운영하는 민박집이다. 시골살이 15년이 훌쩍 넘은 이들 부부는 마을 땅을 빌려 제법 많은 밭농사를 짓고 있다. 멀리서 보기에 서로 존중하며 더없이 평화로운 삶이었다.

그런가 하면 정책적으로 귀농귀촌 문화를 만들어가는 마을이 있다. 함양군 서하면은 경남의 북쪽 끝, 한적한 산골의 오래된 면소재지다. 지난해부터 마을 문화를 활성화하고 청년인구를 유입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중이다. ‘서하다움 청년 레지던스 플랫폼’(서하다움)이 그것이다. 서하다움은 시골에서 살기 희망하는 청년(만 45살 이하) 세대에게 일정 기간 주거공간을 제공하고 시골살이 맛보기 체험을 통해 귀농귀촌을 준비하도록 하는 곳이다. 아직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청년 한주살기, 로컬교육 등을 진행해 타 지역 청년 40~50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곳 카페 서하는 귀농귀촌인과 주민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다. 마침 카페에서 한 청년을 만났다. 서울에 있을 때부터 지리산 자락이 좋아 자주 드나들다가 한달 전부터 서하다움 레지던스 숙소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청년은 시골살이 체험에서 함께 이용하는 공유 사무실과 공유 숙소, 창업·창작을 위한 영상 스튜디오와 목공방, 채소를 키우는 스마트팜 시설 등 구석구석을 보여줬다. 긴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청년은 정착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고, 이렇게 하나둘 모여 젊고 아름다운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

다양한 귀촌 방식이 시골 문화를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 선명한 제 목소리를 내게도 한다. 지난달 25일 전북 남원 실상사에서 열린 지리산생명평화한마당에는 지리산 자락에 기대어 사는 50대 이상 귀농귀촌인들이 많았다. 도법 대종사는 인사말에서 세상은 온천지 뭇 생명들과 한데 어울려 사는 것이라 했다. 나대로 끼워 맞추자면, 성장을 버리고 경쟁을 버리는 순간 생명들과 연대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는.

긴 가뭄 끝에 폭우와 더위가 겹쳤다. 종잡을 수 없는 시절이다. 나이 들어 귀촌이 힘든 게 복지문화시설이 없어서일까. 중장년이 힘들면 청년도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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