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교란’ 배스 낚시 인기… 뒤처리는
저수지 우글 “배스 잡아라”
토종어류 먹어 치워 물속 ‘천덕꾸러기’
생명력 강하고 천적 적어 개체수 급증
젊은층·여성들 루어 활용한 낚시 즐겨
식용 못해 뒤처리 제각각
다시 풀어주거나 숲·땅에 마구잡이 던져
담뱃갑 등 쓰레기도 투척… 환경오염 심각
무단투기·위법행위 단절 강력 규제 필요
전남 장성군 장성호에서 환경의 날을 맞아 잡은 배스가 가득 쌓여 있다. 장성=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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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인구 850만명 시대.’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국내 낚시 인구는 국민 취미 1위인 등산 인구를 추월해 2024년 10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대선 후보 당시 “낚시·여가 특별구역을 추진하고 편의시설을 확충해 1000만 낚시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강태공 표심을 겨냥한 윤 대통령의 29번째 생활밀착형 공약이었다.
실제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루어(플라스틱·메탈로 만든 가짜 미끼)를 활용한 배스 낚시가 인기다. 지렁이나 구더기 등 생미끼를 쓰지 않기 때문에 여성 낚시인도 급증하는 추세다. 특히 민물낚시는 ‘배스’와 ‘배스가 아닌 것’으로 나눠질 정도로 배스의 비중이 크다. 하지만 식자재로서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다 닥치는 대로 토종어류를 잡아먹어 ‘물속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낚아 올린 배스 뒤처리 문제는 낚시꾼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뜨겁다. 낚시꾼이 마구잡이로 투척한 생활쓰레기는 환경오염을 낳는다. 현재 국내 배스 낚시가 처한 문제점과 바람직한 낚시 문화 조성을 위한 대책을 짚어본다.
◆토종어류 닥치는 대로 꿀꺽… 저수지에 우글우글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입 크기 봐. 움직이는 건 뭐든 먹어 치운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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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경북 안동시의 저수지를 낀 마을에서 만난 김영춘(79)씨는 물가를 응시하며 혀를 끌끌 찼다. 김씨가 가리킨 곳에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낚시꾼이 배스를 잡아채 올리고 있었다. 조용하던 이 마을이 낚시꾼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한 건 5년 전쯤이다. ‘런커(50㎝가 넘는 배스) 냉장고’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의 낚시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토종어류는 씨가 말라버렸어. 예전엔 여기서 붕어랑 쏘가리가 나왔는데 배스가 다 잡아 먹어버렸는지 아예 없다니깐.” 김씨는 저수지를 쳐다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배스는 ‘물 안의 포식자’다. 1일 환경부에 따르면 배스는 유해 외래어종이자 생태계 교란의 대명사로 불린다. 붕어, 잉어, 쏘가리, 꺽지, 가물치, 개구리까지…. 움직이는 생물이면 모조리 잡아먹는다. 특히 암컷 한 마리가 산란기에 20만개의 알을 낳는데 치어 생존율은 90%가 넘는다. 생명력이 강하고 천적이 적은 점이 개체수를 늘리는 데 한몫했다.
배스가 낚시꾼들에게 주목받는 이유는 단 하나다. 짜릿한 손맛 때문이다. 문제는 오로지 본인의 재미를 위해 배스를 잡아 다른 저수지 등에 옮기는 행위가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십수년째 낚시를 즐기고 있다는 임모(49)씨는 “배스 낚시를 즐기는 일부 몰상식한 사람들이 배스를 잡아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한다”면서 “저수지나 하천은 인적이 드물고 폐쇄회로(CC)TV가 적다 보니 온종일 감시할 수 없어 사실상 불법행위를 규제할 방법이 전무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번거로운 배스 처리 문제에… 뒤처리 제각각
낚시 커뮤니티에선 ‘배스 처리법’은 금지어로 통한다. 처리법을 놓고 회원들 간에 설왕설래가 이어져 분란을 부추긴다는 이유에서다. 배스는 1960년대 후반 단백질이 풍부해 식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국내로 들여왔다. 튀김을 해 먹으면 명태전과 맛이 흡사하다고는 하나 특유의 비린내 때문에 굳이 배스를 손질해 먹는 사람은 드물다.
이 때문에 배스를 잡은 곳에 다시 풀어주는가 하면 땅에 파서 묻는 사람도 있다. 숨이 붙어 헐떡이는 배스를 풀숲에 던져 죽이는 낚시꾼 역시 수두룩하다. 심지어 나뭇가지에 배스 입을 거꾸로 꽂아 전시하는 일부 몰상식한 낚시꾼도 존재한다.
경북도에 따르면 현행법상 배스는 죽여서 일반쓰레기 봉투에 버리면 음식물쓰레기 투기가 된다. 음식물쓰레기 봉투에 그냥 버리면 분리수거법 위반이다. 따라서 뼈와 머리는 분리해 일반쓰레기로, 살코기는 음식물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이런 번거로움에 배스를 잡아 제대로 분리배출을 하는 사람은 전체의 5%가 채 되지 않는 실정이다.
◆“담배꽁초에 마스크까지” 쓰레기투기 심각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텐트나 간이 의자를 두고 밤새 야영을 한다. 문제는 저수지에서 음식을 해 먹는 것은 물론 담배를 피우거나, 심지어는 대소변까지 아무 데서나 해결한다. 나무와 전봇대 전선 여기저기에 걸린 형형색색의 낚싯줄은 미관을 해친다.
지난 6월 27일 유환길씨가 경북 예천군 소류지에서 버려진 낚싯줄과 담뱃갑 등을 주워 쓰레기봉투에 담고 있다. |
예천군 주민 유환길(31)씨는 자그마한 소류지를 돌며 플로깅(조깅하며 쓰레기 줍기)을 한다. 지난달 27일 유씨는 플로깅에 나선 지 1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쓰레기봉투의 70%를 채웠다. 담배꽁초와 담뱃갑이 가장 많았고, 뒤엉켜 버려진 낚싯줄도 한 뭉텅이나 나왔다. 옥수수 통조림 캔과 일회용 플라스틱 컵, 각종 비닐은 물론 마스크와 물티슈까지 쏟아졌다. 유씨는 “버려진 쓰레기만 봐도 낚시꾼의 대상 어종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서 “본인이 만든 쓰레기만 집으로 가져가도 주변이 깨끗할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낚시와 관련한 위법 행위를 단속할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는 “낚시꾼들이 저수지와 소류지 등에 마구잡이로 버리는 쓰레기는 농촌마을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손꼽히지만 수십년째 근절되지 않고 있다”면서 “무단 투기는 근본적으로 시민의식 문제가 가장 크겠지만 과태료 등 강제 이행금이 낮게 책정된 탓도 커 단속과 규제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낚시금지 구역의 낚시 행위를 단속하고 쓰레기를 줍는 등 마을주민으로 구성한 노인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하루아침에 낚시꾼의 인식을 바꿀 수 없는 만큼 지자체 차원의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자체, 배스 수매행사 일회성… 개체수 조절 역부족
“매년 수매 행사를 하지만 배스 개체 수는 그대로예요.”
대구시 달성군의 저수지를 낀 마을주민 조모(50대)씨는 배스의 이름만 꺼내도 혀를 내둘렀다. 조씨는 “일 년에 한 번씩 동네 저수지에서 유해 외래어종 퇴치 행사가 열려 전국의 낚시꾼이 몰리지만 배스 수는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안주인이 “괜히 여기에 배스가 많이 나온다고 말하면 더 많은 사람이 몰린다”면서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배스를 퇴치하고자 전국 지자체가 펴는 가장 대중적인 사업이 있다. 바로 유해 외래어종 수매 행사다. 지자체는 배스와 블루길 등을 잡아 가져오는 사람에게 ㎏당 적게는 3000원에서 많게는 1만원의 현금이나 지역상품권을 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매 사업이 일회성에 그쳐 개체 수 증가를 막는 데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지자체가 수매한 외래어종의 활용처를 찾지 못해 추가 예산을 들여 쓰레기로 폐기처분하는 곳이 많다. 따라서 보여 주기식이 아닌 외래어종의 개체 수 조절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일부 지자체는 수매한 외래어종을 액체 비료 또는 사료 등으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배스 퇴치로 생태계 보호뿐만 아니라 자원의 재생산이라는 두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런 사업에 앞서 개인을 대상으로 한 배스 상시 수매 등 지자체 차원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데 낚시꾼들은 입을 모았다.
강영록(34)씨는 “낚시라는 게 꽝을 치는 날도 있고 많이 잡는 날도 있다”면서 “고작 몇 마리 지자체에 가져다주고 1000원짜리 몇 장 손에 쥐기 위해 비싼 기름값을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저수지나 댐 입구에 거점을 두고 배스 수거함을 설치해 무게당 지역상품권을 지급하거나 공공근로인력을 추가 증원해 이를 거둬들이는 등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낚시는 이제 단순한 레저 장르를 넘어 스포츠로 정착해 가고 있다. 이 때문에 스포츠피싱 산업의 몸집을 키워 지방도 살리고 낚시 산업 활성화를 꾀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이찬구 한국루어낚시협회(LFA) 회장은 “낚시는 몸을 계속 움직여야 하는 데다 현장 상황에 맞는 미끼를 써야 해 몸은 물론 머리를 쓰는 스포츠”라면서 “낚시를 즐기는 인구는 늘어나는 반면 지자체와 정부 차원의 지원이 현저하게 부족해 국민 여가의 질 향상을 위해서도 낚시산업에 대한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동=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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