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전쟁나면 싸울것" 일본13%·베트남96%…한국은?

댓글 15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최근 G7정상회담에서는 상의를 벗고 남성미를 과시하던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조롱섞인 언급이 있었다. 사진은 2010년 러시아가 공개한 푸틴 대통령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30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전쟁 종식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서방에 대응해 러시아가 구소련 동맹국을 규합하고 중국이 거드는 가운데 확전 우려가 계속 나오고 있는 형국입니다. 최근 나토 정상회의 기간 러시아는 크림반도 침범 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놨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군비 확대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습니다. 독일 의회는 올해 1000억유로 규모의 특별방위비를 조성하는 한편,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간 1.5% 수준이었던 국방비 지출을 2%까지 늘리기로 했습니다. 영국도 2028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2.5%로 증액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참의원 선거를 앞둔 일본은 집권 자민당을 중심으로 국방비를 GDP 대비 2% 이상으로 늘리고 적 기지 공격 능력과 자위대 보유 명기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당론으로 채택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후 75년 만에 개헌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죠.

푸틴 대통령이 섣부른 결정을 하지 않을 거라던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이 엎어진 이후, 예전에 비해 전쟁의 잠재적 위협을 의식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전쟁은 결코 있어선 안 되지만 만약의 사태가 자신의 나라에서 발생한다면 사람들은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할까요. 이와 관련해 세계인들의 의식을 알아보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가 바로 '세계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WVS)'입니다. 오스트리아 빈을 연고로 하는 WVS는 비영리 사회과학연구기관으로서 1981년부터 민주주의, 환경, 가족, 종교, 정체성, 안보 등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의식 조사 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전쟁시 나라 위해 싸울 것인가?" 일본 13% '세계최저'

매일경제

[그래픽=조보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WVS는 설문조사에 공통적으로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당신은 조국을 위해 싸우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포함해 왔습니다. 가장 최근인 2021년 조사에 따르면 해당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이 가장 낮았던 나라는 일본이었습니다. "싸우겠다"라고 응답한 일본인들은 13.2%에 불과해 조사대상 79개국 중 가장 낮았죠. 리투아니아(32.8%), 스페인(33.5%), 마케도니아(36.2%), 이탈리아(37.4%)등이 일본의 뒤를 이었지만, 이들 국가에서 "싸우겠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30%대로, 일본에 비해 20%포인트 이상 많았습니다. 특히 일본은 "모르겠다"는 응답이 비슷한 순위권의 국가들에 비해 20~30%포인트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일본인들 중 "모르겠다"라는 응답이 유독 많은 것은 이들이 소위 평화헌법(헌법 9조)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의 헌법 9조는 전쟁 포기, 전력 보유 불가, 교전권 부인 등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경제

지난 2019년 중국 칭다오에 입항한 일본 해상자위대 군함. 일본 자위대의 전력은 지난해 GFP가 내놓은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5위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하다. [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이 같은 응답 결과를 두고 일본의 전쟁 책임을 묻는 소위 '자학사관'이 젊은이들을 위축시키고 소극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본과 같은 패전국이자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나라로 곧 잘 비교되는 독일의 경우, 응답자의 44.8%가 "전쟁이 나면 조국을 위해 싸우겠다"라고 답했습니다. "모르겠다"는 응답은 12.2%에 불과했습니다. 무엇보다 독일 정치인들은 지난 과오를 철저히 반성하는 행보를 보여왔고, 독일에선 일본처럼 '자학사관' 논란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한국 "싸우겠다" 67%…베트남 96.4% · 중국 88%

매일경제

[그래픽=조보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같은 질문에 대해 한국 응답자들은 67.4%가 "싸우겠다", 32.6%가 "싸우지 않겠다"라고 답했습니다. "싸우겠다"라고 응답한 한국인 비율은 조사대상 79개국 중 40번째로 정확히 중간 순위였습니다. 과거에 비해 감소 경향을 보였지만, 대체적으로 70% 전후를 유지해 비슷한 수준의 나라들과 비교해 별 차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싸우지 않겠다"라는 비율이 조사기간중 거의 유일하게 일관적이고 지속적으로 늘어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1981년 6.5%에 불과했지만 조사 때마다 증가해 2017년 이후에는 32.6%까지 급증했습니다.

한편 싸우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베트남(96.4%)이었습니다. 요르단(93.8%), 키르기스스탄(92.7%), 중국(88.6%), 노르웨이(87.6%) 등이 뒤를 이었는데, 대체로 과거 침략전쟁을 겪은 나라들에서 높은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특히 중국은 시진핑 정권의 애국주의 교육 효과 때문인지 2010년기 74.2%로 하락세였지만, 2017년기 조사에서는 88.6%로 14%포인트 넘게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매일경제

지난 2020년 베트남 수도 하노이 시내에 걸린 코로나19 방역 포스터. [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과 교류가 많은 베트남과 중국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주의 교육이 강한 나라들로 유명합니다. 베트남의 경우 코로나 19 방역을 위해 애국심에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방역 포스터에 "적에 대항하는 것처럼 방역하자"라거나 "집에 있는 게 애국심이다" 등의 슬로건까지 등장했죠. 애국을 명목으로 사회적 격리와 감시가 저항 없이 수용됐습니다.

기업 차원에서도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빈그룹은 소위 '애국 마케팅'을 벌여 쏠쏠한 재미를 봐왔습니다. 베트남 당국은 오래전부터 정부 차원에서 국산품 애용 운동을 벌이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지나친 애국주의로 종종 주변국들과 마찰을 빚기도 합니다. 중국의 경우 중화주의에 애국, 민족주의 교육을 강하게 받고 자란 Z세대가 특히 중화 국뽕에 심취한 세대입니다. 과거 문화대혁명시대 홍위병의 계보를 잇는 이들의 맹목적 애국심은 올 초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집단 린치 행위로 발현되기도 했습니다.

냉전 이후 누그러졌던 안보 불안, 2010년대 반등…우크라 전쟁으로 더 고조될 듯

매일경제

2017년 미국의 45대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왼쪽)와 2016년 브렉시트를 옹호하는 영국 시민들. [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냉전이 종식된 1990년 전후, 안보 불안감이 해소된 덕인지 다수의 조사 대상국에서 "싸우겠다"는 응답은 감소 경향을 띠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2010년 전후로 다시 공통적으로 반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대한 원인은 분명하진 않지만 2008년 리먼 쇼크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 여파가 안보 불안감을 자극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0년대 이후 세계화가 모두에게 과실을 안겨준다는 믿음이 흔들리면서 빈부격차, 산업 공동화, 이민자 문제, 테러리즘 등이 세계화의 어두운 면으로 부각됐죠. 이와 함께 민족주의와 국수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2016년 국민투표를 통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와 그 이듬해 미국 대선에서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의 깜짝 당선 등은 이를 뒷받침하는 상징적 사건들입니다.

올해는 러시아발 전쟁 여파로 각국 국민들의 안보 불안감은 어느 때보다 고조돼 있을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이후 가장 전쟁 가능성이 높다고 거론되는 대만은 실제로 중국발 위협에 국민들의 의식이 높아진 상태입니다. 지난 3월 여론조사에서 대만인 70% 이상이 중국의 침공 때 싸우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현행 4개월 의무 군복무기간을 연장하는 데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국의 1차 타깃에는 대만 이외에 미국령 괌과 일본 오키나와가 포함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오키나와에는 주일 미군 전력 70% 이상이 집중돼 있는데다 지리적으로 가장 신속히 개입 가능한 위치에 있어 대만 사태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매일경제

5월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유지 강조"라는 문구가 들어갔다.[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상황에 따라 주한 미군기지가 목표물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겁니다. 대만 유사시 주한 미군 투입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해 미 상원 청문회에서 "인도태평양사령부 작전 계획에 주한미군 능력을 포함시키는 것을 지지한다"며 주한미군 운용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어제 폐막한 나토 정상회의에서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러시아의 침공이 "푸틴의 전략적 오판"에 기인했으며, 중국도 똑같이 "파국적 오판을 할 실질적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어 "자유세계가 협력해 대만이 방어할 수 있게 돕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호소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로 불렸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버텨 온 것은 국제사회의 지원 덕이 가장 큽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의 철저한 안보태세도 빠뜨릴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는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잠재적으로 인도태평양 안보 지형에 파급효과를 몰고 와 한국에 경제 충격을 넘어 총체적 위협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시사점과 과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토요일 연재되는 '한중일 톺아보기'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관련된 크고 작은 이슈들을 살펴봅니다. 하단 기자페이지 +구독을 누르시면 다음 기사를 쉽고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신윤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