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전통건축재단에 불탄 부재와 함께 보관…공사 시기·책임자 등 기록
"5년 만에 수장고 포화 상태…수리 과정서 나온 나무도 문화재"
파주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에 있는 조선 초기 숭례문 부재 |
(파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2008년 2월 일어난 숭례문 화재를 언급할 때면 흔히 '전소'(全燒)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하지만 숭례문은 모두 불타지 않았고, 상당히 많은 부재가 남았다. 물론 대부분은 화상(火傷)을 입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숭례문 방화 사건 전에 문루(門樓)에 보관돼 있던 조선 초기 목재들이 2005년 충남 부여로 옮겨졌다는 점이다. 이 부재들은 1963년 숭례문을 보수한 뒤 지붕 아래에 넣어둔 것들이었다.
경기도 파주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이하 전통건축재단)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에는 부여에서 옮겨온 조선 초기 숭례문 부재 37점과 화재 이후 수습한 부재 2천612점이 보관돼 있다. 수장고에는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능은 없지만, 전통건축재단은 정기적인 통풍과 제습을 통해 부재들을 관리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전통건축재단에서 만난 김선구 수리기술진흥부장은 조선 초기 숭례문 부재들을 설명하면서 희미한 묵서(墨書·먹물로 쓴 글씨)를 유심히 살펴보라고 권했다.
김 부장은 "목재에는 공사 시기, 책임자나 관료 이름, 상량할 때 보시한 물품과 수량, 상량 사유 등이 기록됐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1479년 목재에는 "삼가 궁궐이 편안히 있을 자리에 공손히 터를 여니 억만년토록 제왕이 머물 곳의 중요한 관문이 우뚝 솟았도다"며 "숭례가 뛰어난 것은 남쪽을 향한 고문(皐門·궁성 바깥에 있는 높은 문)이기 때문에 굳세게 지키면서도 문을 열어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한다"는 글이 있다.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수장고에 전시된 조선 초기 숭례문 부재에는 상량문 작성 시기 외에도 나무 종류와 벌채 추정 시기에 관한 설명이 있다. 대부분은 14세기 후반이나 15세기 초반에 벌목된 것으로 분석됐다.
숭례문 화재 이후 가져온 부재 중에는 1960년대 수리할 때 사용한 목재도 있다. 이 목재들에는 서울시 휘장과 남녘 남(南)이 결합한 휘장이 찍혀 있다.
이곳에는 숭례문 부재 외에도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 나주 불회사 대웅전 등 중요한 건축물을 수리할 때 나온 다양한 부재들도 소장돼 있다.
손창일 부재조사연구팀장은 "수리하고 남은 부재는 과거의 건축 기법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문화재"라며 "일부 부재는 보존관리를 잘하면 재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파주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
2017년 건립된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수장고는 사실상 포화 상태에 이른 상태다. 전통건축재단은 연면적 2천500㎡ 규모의 세 번째 수장고 건축 공사를 추진하고 있지만, 각지에서 옛 부재가 지속해서 나오는 만큼 시설을 추가로 확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흥선대원군이 머문 사랑채인 운현궁 아재당(我在堂)처럼 옛 부재를 활용해 건물을 복원하는 사업도 모색하고 있다. 아재당은 1969년 서울 종로구 부암동으로 이전됐다가 2002년 해체된 뒤 경기도 화성과 충남 부여를 거쳐 2018년 파주로 이관됐다.
지난달 전통건축재단 부지에 재건된 아재당은 외부만 보면 새 건물 같지만, 뼈대가 되는 기둥과 대들보는 대부분 재사용됐다. 전통건축재단은 아재당 부재인 추녀를 재사용하기 전에 비파괴 방식으로 내부를 진단하고, 그에 따라 목재를 덧대는 등의 보수를 하기도 했다.
이정연 전통건축재단 사무총장은 "아재당은 전통기술을 전승하는 장인들이 쓰는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며 "아재당 주변에 또 다른 전통 건축물이 복원되면 활용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흥선대원군 사랑채였던 '운현궁 아재당' |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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